하이닉스 매각 협상-채권단, 안팎 엇박자에 진퇴양난

 마이크론과의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하이닉스 채권단이 협상타결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대내외 변수 돌출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봉착했다.

 지난 주말 협상을 끝내고 귀국한 채권단 대표는 ‘상당 부분 원칙적 합의’란 용어를 써가며 협상이 진척됐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귀국 후 사흘이 지난 상황에서도 협상은 더이상의 진척을 보이지 않고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협상타결이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나라 안팎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고려할 때 협상을 낙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정부측 관계자들은 금주들어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표현으로 조만간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정부 의지 또한 매각쪽으로 이미 굳어졌음을 잇따라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협상분석 전문가들조차도 명쾌한 전망을 내놓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 신속타결의 걸림돌로 작용할 만한 변수가 하나둘씩 튀어나오면서 협상은 채권단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장기화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에서 돌아온 채권단 대표는 귀국과 동시에 채권단회의를 소집, 협상상황에 대해 설명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난 현시점에도 회의소집일자는커녕 회의소집 여부조차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두가지 요인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나는 채권단회의의 안건으로 상정할 만큼 새로 합의된 쟁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설사 안건으로 상정하더라도 전체 채권단의 동의를 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합의된 쟁점인 신설 메모리법인(가칭 마이크론코리아) 신규자금 지원문제가 그렇다.

 채권단은 ‘리보(현 2%)+3%’ 수준으로 15억달러를 지원하기로 마이크론측에 약속했지만 채권단 내부에서는 자금지원에 참여하는 곳이 어디가 될 것인지에 의견 불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은행만이 지원에 참여할 경우 이들에 대한 사후보상 또는 우대문제가 또다른 쟁점이 될 전망인 데다 마이크론의 신용도가 높긴 하지만 ‘A+’ 정도로 완벽히 믿을 수 없다는 점에서 채권단 내부적으로 지원문제에 대한 이견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설령 20여개 쟁점이 극적으로 타결된다 하더라도 최근 세를 불려가고 있는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협상은 또다시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우선 20일 하이닉스 소액주주회원들은 외환은행 본점 주변에서 ‘매각반대’ 시위를 벌였다. 또 오는 28일로 예정된 하이닉스 주주총회에도 참석해 강력한 협상반대의지를 표명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소액주주들은 세를 확산하기 위해 이번주부터 개인은 물론 중소 반도체설계업체 등 하이닉스 관련사를 대상으로 동참운동을 벌이고 있다.

 결국 채권단은 내부의 동의를 얻는 것도 어렵겠지만 소액주주를 설득하는 문제도 난제로 남는다.

 채권단측이 마이크론에 제시한 세부 쟁점은 20여개에 달한다. 이중 지난주 협상을 통해 타결한 쟁점은 서너개 수준에 불과하다. 적게 잡아도 아직 절반 이상이 미타결 쟁점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현재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재정자문사 및 변호사들이 미타결 쟁점에 대한 협상을 진행중이지만 이들 쟁점에 대한 타결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현지 협상 참여자들의 의견이다.

 더욱이 채권단과 마이크론의 협상이 진행중이던 지난주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협상에 걸림돌이 됐다.

 진념 부총리는 지난주에도 “하이닉스를 매각하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는가 하면 “어떤 식으로든 세계적인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고 독자생존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이닉스는 해외매각이 아니라 외자유치로 봐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 역시 “하이닉스의 독자생존은 거론하지 않겠으며 매각협상은 잘돼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지난주 화요일부터 진행된 채권단과 마이크론 협상에는 마이크론 애플턴 사장이 참여하지 않았다. 하이닉스 박종섭 사장, 이덕훈 한빛은행장, 이연수 외환은행 부행장 등 국내 대표는 모두 협상테이블에 앉았지만 정작 마이크론의 최종결정권인 애플턴 사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협상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한국으로 되돌아간다고 하자 애플턴 사장은 맨 마지막날 얼굴을 내밀었다. 협상단이 하루 늦게 귀국한 것도 애플턴 사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즉 마이크론은 상당히 고자세로 협상에 임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발언은 마이크론의 기를 살려주고 있는 셈이다.

 여하간 채권단은 마이크론과의 협상을 진행하면서 채단권 내부의 동의, 정부관계자의 발언, 소액주주의 반대 등 갖가지 난제에 부딪혀 마이크론과의 1대1 협상이 아닌 1 대 다(多)의 협상을 벌이면서 조기매듭할 수도 장기화할 수도 없는 난관에 처해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