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을 ‘합친’ 인구 1억7000만명의 구매력은 일·한 양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대단한 매력을 지닌 시장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공식 방한에 앞서 지난 19일 도쿄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정보기술(IT)산업 등 관련업계를 중심으로 양국간 FTA 체결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져보는 등 국내 경제·산업계가 부산하다. 전기·전자업종을 중심으로 한 국내 IT업계는 일단 일본과의 FTA 체결에 반대의사를 보이고 있다. 대국적 차원에서 FTA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더라도 일본에 비해 비교열위에 있는 국내 전기·전자산업의 보호를 위해서는 기술이전, 공동표준화 추진, 단계적 관세 폐지 등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게 관련업계의 지적이다.
◇IT산업의 득과 실=한일 FTA 체결 추진에 관한 한 국내 전기·전자업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마디로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교역을 통해 매년 100억달러가 넘는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중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 일본산 전기·전자품목의 수입에 의해 발생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전기·전자분야에서만 40억6669만달러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전자산업진흥회의 안준일 국제통상과장은 “현재도 전자제품의 대일수출은 이미 무관세 수준이나 실제로 국산 전자제품에 대한 일본내 수요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제 전자제품에 8%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나 지난 99년 수입선다변화제도 완전폐지 이후 대일 전자제품 수입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그나마 존재하는 수입관세마저 포기한다면 중소업체가 대부분인 부품·소재업종을 중심으로 국내 전자산업의 근간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게 관련업계의 지적이다.
하지만 초고속인터넷, 전자상거래 등 몇몇 IT서비스 분야에서는 일본내 통신시장 개방 등 각종 비관세 장벽 철폐에 따라 한일 FTA의 최대 수혜업종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컴퓨터, 디지털가전 등 몇몇 완제품도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아 양국간 FTA 체결시 국내 IT산업내에서도 명암이 갈릴 전망이다.
◇향후 과제=일부 비교열위 업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대세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주변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피해업종에 대한 상대적 보상책과 비전제시를 동반한 협상안을 통해 이해관계 당사자간 합의와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IT산업의 경우 FTA 협상에 관해 지금까지 이렇다할 내부 협의나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향후 협상이 본격화됐을 때 대정부 차원의 통일된 건의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전기·전자 등 IT 관련 협회나 단체를 중심으로 FTA 전담 준비반을 구성, 이에 대한 구체적 연구와 그에 따른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대적 우위에 있는 일본 IT산업을 감안, △첨단기술 상호이전 △표준화 공동추진 △전자서명 상호승인 △단계적 관세 폐지 등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워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도 FTA 파트너로 적극 유도해 한중일 3국을 동아시아 경제블록의 중심축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