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피플>원자력硏 정용환 박사

 “연구원들이 한 우물을 팔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전문가 될 수 있습니다. 외국에는 특정분야에서 30∼40년씩 일한 과학자들이 수두룩합니다.”

 18년째 핵연료 피복연구에만 몰두해온 한국원자력연구소 핵연료제조기술개발팀의 정용환 박사(45). 그는 대부분의 연구원이 5∼10년 정도면 연구과제가 없어져 업무가 바뀌지만 자신은 운이 좋아서인지 한 분야에만 몰두한 결과 남들보다 지식이 많이 쌓이고 연구성과도 많았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최근 원자력부문의 핵연료 피복관용 신소재 개발과 관련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3대 인명기관인 영국의 IBC(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 미국의 마르키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 및 ABI(American Biographical Institute)에서 발행하는 인명사전에 동시에 연속등재되는 영예를 안았다.

 1899년 초판을 낸 후 정치·경제·사회·종교·과학·예술 등 각 분야에서 매년 세계적인 인물 5만여명을 선정해 프로필과 업적을 등재하고 있는 미국의 ‘후즈 후 인더월드’ 2001·2002년판에 연속 올랐으며, 2년마다 우수한 과학자 2만명을 선정하는 ‘후즈 후 인 사이언스&엔지니어링’2002년판에도 이름이 오르는 등 이제 그의 업적은 세계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정 박사는 “국내에선 연구과제중심제(PBS) 때문에 사실 한 우물 파기가 어려운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소 측의 배려와 연구 분야의 희귀성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5∼6년 전인 초창기엔 실험장비가 없어 고생이 많았습니다. 할 수 없이 다른 연구팀이 장비를 이용하지 않는 밤이나 주말을 이용했습니다. 밤에 출근하고 낮에 자야 하는 악조건의 연속이었죠.”

 요즘도 일요일 없이 보통 자정이 되어서야 퇴근한다는 정박사는 연구초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무엇보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것은 주위사람들의 시선이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도 10년,15년을 연구해도 신소재를 개발하지 못했는데 과연 되겠느냐는 불신감을 나타낼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더욱이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신소재 개발을 어느정도 마무리 짓고 보니 국내에는 정밀튜브 만드는 기술이 없는 겁니다. 할 수 없이 당시 우리보다 앞서있던 일본의 신세를 지기로 했죠. 그런데 지르코늄은 전략물질이란 것을 자신은 물론 외무부나 과기부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나중에 일본측서 외무부로 정밀튜브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 알게 됐습니다.”

 외교적인 문제로 정박사는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기술을 외국에 유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받아 외무부로부터 엄청나게 시달렸다는 것. 결국은 순수한 의도가 알려지면서 경고장 정도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연구 분위기는 팀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연구소는 밤을 새우며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원들을 인정해줄 수 있는 보람된 직장 분위기를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합니다.”

 정 박사는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 지르코늄 심포지엄에서도 연구업적을 인정해줄 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며 핵연료 피복관 신소재 기술에 관한 한 일본에 앞서있다고 힘줘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약력>

 △91년 연세대 재료학 박사 △92∼93년 독일 지멘스사 IAEA 장학생으로 파견 △94년 캐나다 원자력공사(AECL) 공동연구원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소 신형 피복관 개발연구 과제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