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이동전화단말기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신기술에 대한 빠른 흡수력과 이를 바탕으로 부가기술을 개발하는 응용력 때문이다. 퀄컴으로부터 CDMA 원천기술을 받아들여 디지털 이동통신 서비스를 가장 먼저 상용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핵심 신기술 이전은 퀄컴·텍사스인스트루먼츠(TI)·모토로라·커넥선트 등 외국의 비메모리반도체업체들로부터 주로 이뤄졌다. 이들은 한국 이동통신시장이 급부상함에 따라 90년대 중반부터 현지법인을 잇따라 설립하고 핵심부품을 공급하고 본사 기술인력을 파견,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이같은 외국 반도체업체들과의 적극적인 협력관계는 CDMA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긴 했지만 이동전화단말기의 부품 국산화율을 20%대에도 머물지 못하게 하는 ‘필요악’이 돼 버렸다. 현재 이동전화에 들어가는 반도체에서 국산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 산업계와 연구계가 핵심 반도체 국산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다. 비록 아직 상용제품에 탑재되지는 않았지만 꾸준한 기술개발로 차세대 이동통신시장에서 완전한 ‘기술독립’을 위해 땀을 흘렸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이 94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당시 기술개발을 맡았던 임명석 박사(현 전북대 교수)와 김선영 박사(위더스텔레콤). 두 사람은 ETRI가 퀄컴과 CDMA 원천기술에 대한 첫 라이선스를 맺은 뒤 기지국·중계기 등 응용시스템에 적용할 기술개발을 위해 이동통신개발단을 축으로 단말기용 모뎀칩에 대한 연구로 큰 족적을 남겼다.
이들이 개발한 모뎀칩 기술 성과는 삼성전자 등 국내 업체에 이관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이미 cdma2000 1x에 버금가는 모뎀칩을 개발한 것도, LG전자가 비동기 IMT2000(WCDMA) 기지국용 핵심 반도체를 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ETRI 반도체원천기술연구소(옛 회로소자연구소)와 이동통신연구소를 통해 IMT2000 관련 기술은 물론, 4세대 이동통신기술 중 모뎀 분야를 맡고 있는 방승찬 박사와 고주파(RF) 분야를 담당하는 홍현진 박사 등도 이동전화 3000만 시대의 숨은 공로자들이다.
이밖에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단말기용 모뎀칩을 개발한 이오넥스 전성한 사장과 서두인칩 유영욱사장, WCDMA 기지국용 반도체를 개발한 에이로직스 김주덕장, 그리고 다중모드·다중밴드 고주파집적회로(MMIC)를 개발한 에프씨아이 윤광준 사장, 독자적인 상보성금속산화막반도체(CMOS) 고주파직접변환기술을 바탕으로 위상동기루프(PLL) 등을 국산화한 지씨티세미컨덕터 이경호 사장 등도 이동전화 보급 4000만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