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전화 `3000만명 시대`>숨은 주역들-단말기

◆삼성전자

이기태 사장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삼성이 GSM 단말기 SGH600을 개발, 수출에 나설 당시 가격책정으로 무척 고민했다. 그는 밑에서 올라온 책정가격을 말한마디없이 죽죽 그어버렸다. 너무 낮다는 것이다. 품질에 걸맞게 제값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품질제일의 고집이 바로 애니콜 신화를 낳았다.

 이 사장은 CDMA에서 고품질의 하이엔드제품만 추구,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확고부동한 세계 1위로 올려놓았다. 이 사장의 CDMA 성공 뒤에는 비디오와 오디오, 팩스 등 단말기에 필요한 분야에서 골고루 축적한 경력이 숨어있다. 그는 무선사업본부로 오기 전 비디오생산부장과 음향품질관리실장, 팩스사업담당 이사 등을 역임했다. 애니콜이 벨소리 화음과 선명한 컬러화면으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등 품질과 그게 걸맞는 높은 가격으로 이동전화단말기의 명품을 창조해낸 이기태 사장. 그는 이동전화단말기 3000만시대의 숨은 주역일 뿐 아니라 2류에 머물던 국내 산업을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끌어 올린 공로자이기도 하다. 

 

 이동전화단말기 3000만시대라는 CDMA신화의 숨은 주역으로는 박상진 전무(텔레커뮤니케이션총괄 무선사업부 무선마케팅담당 부사업부장)와 전병복 상무(텔레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총괄 무선사업부 제조팀장), 지영복 상무(텔레커뮤니케이션총괄 무선사업부 마케팅팀장)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온 박 전무는 해외시장 개척 공신으로 지난 93년 이래 줄곧 해외에서 살다시피했다. 5년간 구주법인에서 일할 정도로 유럽에 정통한 그는 애니콜의 유럽시장 진출과 성공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지 상무는 박 전무를 도와 글로벌 마케팅에 헌신해온 인물. 두 사람은 애니콜이 국내시장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명성을 얻도록 해 애니콜 사용자들의 자부심을 한껏 드높였다.

 전 상무는 이기태 사장을 도와 품질제일주의 애니콜 신화를 창조한 이 사장의 그림자같은 존재다. 99년 제조팀장으로 합류한 그는 명품 만들기의 장인으로 이기태 사장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 사장과 함께 ‘애니콜 4인방’으로 불린다.

 삼성에서 또 다른 숨은 공신으로는 지난 90년대 중반 벅찬 상대였던 모토로라를 제압하고 애니콜의 점유율을 내수시장에서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지금까지도 국내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조진호 부장이 꼽힌다. 조 부장은 세계적인 명성의 모토로라를 내수시장에서 제압해 애니콜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LG전자

 반도체 산업과 함께 한국의 정보통신 산업의 첨병으로 자리잡은 이동전화단말기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 뒤에는 LG전자 정보통신사업부를 총괄하는 김종은 사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난해 LG전자를 글로벌 톱10의 이동전화단말기 업체로 올려놨으며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한국시장에서도 확고한 2강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다. 연구개발(R&D), 디자인, 상품기획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유수의 업체와 나란히 설 수 있도록 LG전자의 경쟁력도 확보했다.

 이동전화단말기의 품질강화에 사활을 걸고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한 결과 지난해 처음으로 1000만대 생산을 돌파했으며 100%가 넘는 매출신장률을 기록했다. 해외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수출 실적을 거두며 한국 이동전화단말기 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김종은 사장은 “현재 전세계가 한국의 이동전화단말기 산업 성장에 긴장하고 있으며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의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이동전화단말기 사업에 필요한 LG전자의 모든 핵심역량을 지속적으로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지난해 988만대(2.5%)의 이동전화단말기를 세계시장에 공급하며 일본의 교세라 등 유수 업체를 제치고 세계 10위로 도약했다. LG전자의 글로벌 톱10 진입은 전세계 이동전화단말기 시장의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달성한 것이란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같은 LG전자 이동전화단말기 사업의 가파른 성장에는 숨은 일꾼들의 공로가 크다. 단말사업부장인 신기섭 부사장은 국내 및 해외 이동전화단말기 생산공장 사업부의 수장으로 신속한 의사결정과 책임감으로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신 부사장은 국내에서 cdma2000 1x 컬러단말기 생산을, 해외시장에서는 트라이모드 및 듀얼밴드 단말기 생산 등을 통해 첨단 제품 생산에 대한 그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LG전자는 그가 단말기 생산을 맡은 지난 99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300만∼400만대씩 생산량을 늘려왔다.

 CDMA단말기 상품기획팀장인 배원복 상무는 국내 및 해외 이동전화단말기 소비자들의 기호와 트렌드를 파악해 이를 상품화하는 중책을 담당하고 있다. 배 상무는 단말기의 슬림화와 차별화 전략으로 히트작을 여러개 내놓았다. 지난해 LG전자가 국내시장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컬러단말기도 그의 머리에서 기획됐다.

 이동단말기 한국영업담당 이관행 상무도 주목받는 인물. LG전자의 국내영업 선봉장인 이 상무는 삼성전자와의 컬러단말기 시장점유율을 좁히면서 영업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LG전자의 브랜드인 ‘싸이언’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공헌한 숨은 공로자라는 게 회사 내부의 평가다.

◆팬택·큐리텔 부회장

 갓 40대에 접어든 박병엽 팬택·큐리텔 부회장은 CDMA계에서 배출한 젊은 스타다.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선구자였던 맥슨전자에 입사해 통신산업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지난 91년 팬택을 설립, 승승장구했다. 92년 통신기술 개발 공로로 표창을 받은 그는 이후 최우수 기술경영인상, 국제통상진흥인 대상, 올해의 정보통신인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한 CDMA드림의 주인공이 됐다.

 CDMA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세계 굴지의 기업인 모토로라와 제휴한 그는 최근 KTB컨소시엄에 참여해 현대전자에서 분리돼 나온 현대큐리텔의 최대주주가 돼 당당히 CDMA계에서 어엿한 일가를 이루어냈다.

 팬택과 큐리텔을 통해 CDMA단말기를 전세계로 실어나르고 세계적 거인 모토로라의 파트너가 된 박 부회장은 이동전화단말기 신화의 주역이자 젊은이들에게 또다른 신화를 꿈꾸게 하는 코리안드림의 전도사이기도 하다.

 

박 부회장의 일가인 팬택·큐리텔에는 이 시대의 숨은 기술주역들이 자리잡고 있다. 팬택 사장이자 팬택·큐리텔의 대표이사로 있는 박정대씨와 팬택 사장인 이성규씨, 송문섭 큐리텔 대표이사 사장인 송문섭씨가 바로 이들이다.

 이 3인방은 모두 LG와 삼성에서 뼈가 굵은 정보통신계의 내로라하는 엘리트다.

 박정대 팬택 사장은 LG정보통신에서 단말사업본부장까지 역임하고 팬택신화에 동참했다. 이성규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CDMA 개발을 담당했던 주역중 한 사람이다. 송문섭 사장은 미국스탠퍼드 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성에 발을 들여놓은 후 전무까지 역임하고 현대전자로 적을 옮겼다.

 쟁쟁한 경력과 명성을 지닌 이들 3인방은 팬택 성장의 숨은 공신이자 중견기업에서 메이저로 발돋움하려는 팬택·큐리텔가의 중추적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