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80년대 중반 시위장에서 곧잘 불리운 운동가요의 첫 대목이다.
실제 우리나라 인구는 4800만명 정도이나 3000만명이라는 숫자는 바로 온국민의 대명사다. 이러한 측면에서 2002년 3월은 전국민 누구나 하나씩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 시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지난달까지 이동전화 가입자는 모두 2967만명이었고 지난주 3000만명을 돌파한 게 거의 확실시된다. 지난 8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지 18년 만의 일이다.
보급률은 63% 수준이다. 하지만 생산가능연령으로 분류되는 15∼64세의 인구를 3400만명이라 보면 88%로 껑충 뛴다. 실질적인 경제 활동인구로 보면 거의 대부분이 휴대폰을 갖고 있는 셈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갖고 다니는 것 자체로 신분을 과시했던 이동전화가 이젠 생활 필수품으로 정착한 것이다.
바야흐로 이동전화 전성시대다. 이용경 KTF 사장은 “이동전화만큼 이동성과 접근 용이성을 좋은 기기는 없으며 인터넷 대중화의 첨병으로도 구실할 것이며 나아가 단순한 통화수단을 넘어 금융거래, 동호회 활동, 오락 등의 총아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로 전화 도입 100주년을 맞은 우리 정보통신 사회를 이젠 이동전화가 이끌어가고 있다.
그런데 산업적인 시각에서 보면 3000만명이라는 숫자는 거의 한계 상황을 뜻한다. 최대 가입자수를 3200여만명으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 거의 수요 포화 상태에 도달한 셈이다. 새로운 활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과도기적인 혼란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신규 고객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던 3사가 이젠 다른 회사의 고객을 빼앗는 데 골몰하고 있다. 최근 3사는 단말기 보조금을 놓고 서로 고발과 폭로전을 벌이고 있다. ‘이전투구’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 불리기 식의 가입자 유치경쟁으로는 가입자 수가 아닌 가입자 유지가 중요한 화두가 된 새로운 환경을 쫓아갈 수 없다는 지적한다. 이동 3사는 기존 가입자 기반을 바탕으로 경쟁사와 차별화한 서비스와 수익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선인터넷이 대표적이다. 정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 접속 매체 가운데 이동전화의 비중은 10%였으나 내년께엔 54%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반면 87%를 차지했던 PC의 비중은 35%로 낮아질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를 읽은 듯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전화서비스 3사의 전략도 점차 변하고 있다. 3사는 다양한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음성 위주의 이동전화 서비스를 데이터 중심으로 바꿔나가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3사는 이동전화를 e비즈니스의 셋톱박스(STB)로 만든다는 중장기 전략도 짜고 있다. 잘 갖춰놓은 무선 통신망을 최대한 활용해 다가오는 이른바 ‘모바일 비즈니스(m커머스)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야심이다.
cdma 2000 1x의 도입, 컬러화면 단말기의 등장으로 무선인터넷과 이에 기반한 이동상거래(모바일커머스)가 급성장하고 있다. 이동전화기로 물건도 사고 결제도 할 수 있다. IMT2000 서비스가 본격화하면 말 그대로 m커머스시대가 활짝 열린다.
이와 관련, 정보통신부는 이동전화기로 이용한 전자지불 한도를 확대하는 한편 위치정보의 획득과 공유, 관리를 위한 기술 개발과 표준화 작업을 진행중이다. 나아가 이동중에도 민원을 처리하고 행정 업무도 보는 모바일행정서비스도 추진하고 있다.
이동전화 사업자와 정부가 이처럼 이동전화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으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정작 다른 곳에 있다. 이를테면 비싼 통화요금을 낮춰달라는 요구들이다.
설비 증설 등의 투자로 인해 요금을 쉽게 내릴 수 없겠으나 그 대신 데이터통신과 같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요금 인하도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동전화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공공 장소에서 쉴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 소리와 남을 신경쓰지 않는 큰 목소리의 통화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많다. 또 이동전화로의 스팸메일도 점차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동전화 천국’의 어두운 면을 밝게 하는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동통신 대국임에도 이동전화기용 칩을 비롯한 핵심 기술을 외국에 의존하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손꼽히고 있다.
이동통신 단말기가 이동전화기는 물론 개인휴대단말기(PDA), 휴대형 게임기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핵심 기술을 갖지 않고선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만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국으로만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특히 해외시장 진출은 새로운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동전화 사업자들은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CDMA서비스 관련 기술과 마케팅력으로 해외시장 공략도 모색하고 있다. 국내 관련 장비업체를 대신하는 IT종합상사의 역할을 맡는다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이동통신사업자들이 국내 장비부품과 세트 제조업체들과 함께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수출할 경우 명실상부한 이동통신 강국이 된다는 비전을 달성하는 시점은 상당히 앞당겨질 수 있다.
‘이동전화 3000만명 시대’는 바로 △모바일비즈니스로의 질적 향상 △올바른 이용문화 확산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이은 전략 산업으로의 육성 등과 같은 새 패러다임으로의 전환기에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