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여간 벤처산업의 양적 성장에 치중해 온 정부의 벤처육성 정책이 4월부터 달라진다. 함량미달로 사실상 벤처역할을 못하거나 벤처기업들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피해를 줄 수 있는 업체들을 솎아내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지난 2월 28일 발표한 ‘벤처기업 건전화 방안’의 후속조치로 시작되는 이번 벤처 옥석 가리기를 위해 정부는 이미 칼집에서 칼을 빼들었다. 중기청이 다음달부터 도입하는 혁신능력평가지표는 도려낼 벤처를 결정지을 잣대가 될 전망이다.
벤처 옥석 가리기는 정부만 나선 것이 아니다. 돈줄을 쥐고 있는 벤처캐피털들도 투자기업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 부실 벤처기업 분류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지원받는 것에 익숙해 온 벤처업계에 한바탕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칠 전망이다.
◇혁신능력 주요 평가항목=기술혁신능력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벤처기업의 혁신능력을 평가한다.
부문별로는 △기술혁신능력:R&D 활동지표 및 기술축적 등 △기술사업화능력:기술 제품화 및 생산화, 신제품 마케팅능력 등 △경영혁신능력:변화대응능력 및 조직관리능력 등 △기술혁신 성과:기술경쟁력 변화 성과 및 경영성과 등의 항목을 각각 측정한다.
업종별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각각 92개, 90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우량기업 및 부실기업 사후관리 방안=평가결과 새로운 기준에 적합한 기업은 우량기업으로, 미달하는 기업은 부실기업으로 분류한다.
부실기업으로 판정되는 업체는 벤처확인 유효기간 내에는 벤처기업으로 인정하되 상시 관리대상으로 분류키로 했다. 유효기간 내에는 혁신능력을 갖추도록 컨설팅기관을 통한 기술지도를 실시할 계획이다.
신규 신청기업에 대해서는 유효기간을 새로운 기준이 발효될 오는 10월 31일까지만 인정키로 했다.
◇과제=중기청은 이번 새로운 벤처확인제도 개선과 관련해 혁신능력평가에 따른 기준 및 법개정 문제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처음 시행하는 새로운 평가지표인 만큼 옥석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가려낼 수 있을지 중기청도 현재로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기존 벤처 가운데 75∼80% 정도를 우량기업으로 분류하는 선에서 눈높이를 결정한다는 기본 방침은 확고하다. 중기청은 4월말까지 벤처확인에 따른 기준점수를 최종 확정,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을 구분할 계획이다.
법령개정 절차도 쉽지만은 않다. 중기청은 벤처기업 확인기준 개편 및 불법기업 확인취소 등을 담은 벤처기업육성특별조치법을 개정, 오는 4월 임시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회파행 등으로 인해 새로운 기준이 발효되는 시점은 정작 8월이 돼서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벤처업계 반응=벤처기업협회 장흥순 회장은 “지금 벤처업계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시기”라며 “이번 중기청의 기술혁신접근시스템에 기초한 기술평가작업을 통해 부실 벤처기업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 회장은 또 “이번 새로운 시스템이 기존 벤처평가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평가 초기에 검증작업을 거치게 돼 많은 기업들이 걸러지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그동안 벤처인증 무용론까지 대두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벤처평가제도의 마련은 벤처가 성장해가는 데 꼭 필요한 조치”라며 “그러나 벤처인증 강화가 신생벤처가 생겨나는 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산업구조나 산업밸런스를 감안하지 않은 기술력 위주의 평가는 자칫 산업의 기형적인 육성이라는 문제점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정부의 신중한 제도시행을 요구했다.
◇벤처캐피털업계 옥석가리기=벤처케피털도 정부와 같은 시기에 투자기업에 대한 재평가에 나선다.
코스닥등록기준 강화 등으로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회수 가능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구분할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벤처버블 기간에 투자했던 부실기업을 과감히 정리, 투자 포트톨리오의 질적 개선을 꾀하고 있다.
한국기술투자는 코스닥등록 가능기업의 외형을 현행 매출 100억원, 순익 10억원 규모에서 매출 200억원, 순익 20억원 규모로 상향조정했다. 또 비즈니스모델에 대해서도 확실한 수익성을 갖춘 기업 위주로 재편하고 있다.
KTB네트워크도 지난 11일 기획회의를 열고 새롭게 강화되는 코스닥 등록기준에 따른 대안마련에 들어갔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증자가 이뤄진 기업에 대해서는 코스닥 등록시기를 재조정하고 기존 투자기업의 재투자 여부나 투자일정도 조정에 들어갔다.
산은캐피탈의 경우도 각 지점과 심사역별로 투자기업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각종 이행사항, 자금 집행여부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