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음악이라도 요즘은 평범한 접근을 가지고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뭔가 음악 내외적으로 아이디어나 기획이 덧입혀져야 한다. 음악만을 성실하게, 즉 곧이곧대로 만드는 것을 고집하는 뮤지션은 좀 거추장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재즈풍의 음악으로 이름을 새긴 ‘가요계 황태자’ 김현철은 3년 만에 내놓은 신보 ‘...그리고 김현철’에서 과감한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웠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딴 가수를 대거 초빙해 공동작업 형식으로 앨범을 단장한 것이다. 이른바 듀엣앨범이다.
어찌보면 외국 뮤지션 산타나가 99년 그래미상을 석권한 블록버스터 앨범 ‘Supernatural’이 연상된다. 산타나가 젊은 후배가수들의 노래를 내세워 참신함을 수혈한 것처럼 김현철도 비교적 신선하고 관심을 모을 만한 동료가수를 초청해 자신만의 앨범보다 훨씬 새로운 느낌과 다양한 맛을 만들었다.
윤상, 봄여름가을겨울, 김광진 같은 중견에서부터 R&B의 샛별 박효신과 애즈원, 펑키한 감각의 음악을 하는 그룹 불독맨션과 모던 록의 신성 롤러코스터에 이르기까지 참여가수의 스펙트럼이 다채롭다. 심지어 핑클의 옥주현도 있다. 이러한 외형적 신선도는 자신의 이름이 줄지도 모를 식상함을 제거하는 데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
음악도 게스트와 그들의 음악적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자신의 음악색깔을 지키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김현철과 참여가수의 보컬 색조는 박효신과 노래한 ‘그보다 더’가 말해주듯 대비되면서도 조화롭다. 앨범의 성과는 바로 이 부분이다. 롤러코스터의 여성보컬 조원선과 작업한 ‘봄이 와’, 애즈원과 호흡을 맞춘 ‘Is It Love’, 그리고 불독맨션과 흥을 지핀 ‘We All Need A Lifetime’ 등은 곡마다 주인과 손님의 숨결에 치우침 없이 균형을 이룬다.
이 점에서 앨범은 외적인 공동작업을 넘어 서로 다른 두 스타일이 잘 빚어진 내적인 ‘크로스오버’ 앨범이라 할 만하다. 김현철의 멜로디 감수성은 여전하며 자신이 주도한 편곡과 프로듀스도 매끄럽다. 역시 그는 괜찮은 ‘음악감독’이다.
초대가수가 없는 곡이라곤 앨범의 첫머리를 여는 ‘Loving You’ 뿐이다.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것은 멜로디도 빼어나고 독자성을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아마도 게스트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앨범을 알리려는 정직함으로 읽힌다.
99년 앨범 ‘어느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미친 짓이야’를 전후로 부진에서 탈피해 음악적 활기를 되찾은 수작 앨범이다. 하지만 대중스타로서의 활기는 음악의 질이 성공의 척도인 세상이 아니라서 장담하지는 못한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이 또 다시 온다’고 앨범에 썼듯 김현철은 다시 대중이 앨범에 따뜻하게 반응하는 봄을 맞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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