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토리>아장닷컴(3)

 “아장닷컴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바로 ‘피구’죠. 악역 캐릭터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는 못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성격과 마음을 제일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누구인지를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김희연·오상민 두 작가가 대답한 말이다. 이 답변에 다른 스태프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두 신인작가는 그렇게 항상 말과 행동에서 정상적이고 상투적인 상황들을 그냥 두지 않고 재치있게 반전시켜 듣는 이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두 작가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아장닷컴의 제작은 필자를 비롯해 먼저 참여한 감독과 제작스태프들에 의해 기본 스토리와 등장인물을 설정하고 캐릭터 디자인과 배경이미지를 1차적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이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훨씬 높이는 역할을 했다.

 두 작가가 아장닷컴의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우연이다. 기존 멤버들이 몇몇 경험 있는 기성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들을 검토해 봤지만 마음에 드는 작가를 찾지 못했다. 특히 동서양 과거의 신화와 설화 속 캐릭터들을 첨단과 미래의 공간인 인터넷과 연결 짓는 설정을 많은 작가들이 소화해 내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우리 스태프들은 이야기 속에 다운로드, 링크, 백본망, 방화벽, 채팅 등 인터넷과 관련된 개념들을 애니메이션 상상력으로 펼쳐 줄 감각있는 작가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파격적인 코믹성 중심으로 작품 스타일을 정했기에 작가는 신화와 설화 속 캐릭터들을 현대적으로 패러디하며 구성과 대사에서 시청자들의 웃음을 터트려 줄 표현요소를 잡고 있어야 했다. 캐릭터 디자인이 자꾸 앞서 나가며 풍부해질수록 시나리오에 쫓기는 필자와 안재훈 감독 등 제작스태프들의 심정은 조금씩 초조해졌다.

 그러던 중 두 작가를 만나게 됐다. 필자와 같이 기획을 담당하던 제작PD가 끌고 간 한 대학의 연극영화과 졸업영화제에서 두 편의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애니메이션 단편을 보게 된 것이다. 필자와 감독은 막연한 기대감 속에 그 단편을 연출한 김희연, 오상민 작가를 만났다. 두 작가는 대학졸업반 학생이었고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경험이 전무했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감독을 꿈꾸면서도 애니메이션의 자유로운 파격성과 팬터지한 소재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일단 두 작가에게 전에 정리한 설정을 토대로 한 편의 시나리오를 쓰게 했다. 전작의 시나리오 샘플이 없는 상태에서 작가의 구성과 묘사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두 작가는 신인으로 겪어야 하는 테스트의 설움을 필자와 감독에게 당하며 기본 스토리 설정과 디자인된 캐릭터와 배경이미지 등을 학습받으며 결국 제작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2주 후 1편 시나리오 초고를 받은 필자와 감독의 눈엔 웃음꽃이 피었다. 시나리오 곳곳에 배어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구성력은 다른 제작 스태프들도 놀라게 했다. 작가들은 새롭게 설정한 소심하고 울기만 잘 하는 여성적 성격의 제우스신과 다혈질의 앞뒤를 안 가리는 열혈남아 용왕의 만남을 재치있는 동서양 신화를 결합해 꾸민 것이다. 이런 동서양 퓨전 캐릭터의 연결은 늑대인간과 구미호의 사랑다툼으로 번지기도 했으며, 큐피트가 바이러스를 퍼트려 사람들을 서로 미워하게 하고 드라큐라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물을 물었다가 오히려 자신이 감염되는 등 역설적인 상황설정이 흥미로운 패러디 스토리로 그려졌다.

 아장닷컴의 9회째인 ‘드라큐라편’이 방송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주인공 아장이 드라큐라에게 공격을 당하다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인 마늘을 던지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마늘을 먹어치운 드라큐라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마늘을 먹고 단련했는데, 이까짓 마늘로 날 위협을 하느냐”며 아장에게 일격을 가한다.

 이 장면을 보며 필자는 마냥 웃었다. 그때 같이 있던 김희연, 오상민 두 작가는 “저것도 쓸 때는 재미있지만 지금 보니까 왠지 어색하네”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또 이들 작가는 자신이 쓴 것에 대해서 필자와 무언가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다르게 보면서도 같이 재미를 느끼려고 하는 두 작가의 습관은 색다른 시도의 실험정신과 공유의 책임감이 되어 그들을 신인이지만 기성 못지않은 프로로 만들고 있었다.

 

 <이병규 미지온엔터테인먼트 PD elazen@mizi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