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핀란드·한국·미국. 얼핏보면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네 국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혹시 이동통신 대국이라는 답을 하면 50점짜리 답안이다. 이동통신을 넘어 모바일 강국이라는 답을 하는 것이 정답이다. 모바일 강국은 단순 음성전용 이동전화뿐 아니라 이동전화나 노트북·PDA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음성통화·인터넷·업무·상거래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국가를 의미한다. 모바일 강국이 되기 위한 제 1 필수조건 가운데 하나가 자국내 강력한 모바일 단말기업체들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모바일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졌더라도 자국내 변변한 단말기 업체가 없다면 결국은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위의 네 국가는 소니·노키아·삼성전자·LG전자·모토로라같은 세계적인 단말기 업체가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모바일 강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동전화 단말기 성공신화=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이동전화 단말기 강국이다. 지난해 100억달러에 가까운 수출액을 이동전화단말기에서만 올렸다. 전세계 CDMA 단말기 구입자 2명 중 1명꼴로 국산 CDMA 단말기를 구매한 셈이다. 반도체·가전 등의 산업과는 달리 삼성전자·LG전자 등 대형업체 외에도 든든한 허리진이 포진해 있다는 것이 국내 이동통신 단말산업의 강점으로 꼽힌다. 텔슨·팬택·세원텔레콤 등 매출액이 수천억원에서 1조원에 이르는 중견기업들이 있는가 하면 기술전문 개발업체, 제조전문업체 등 잔뿌리가 끊임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국내 전자제품 수출에서 풀어야할 숙원과제인 저가 이미지를 벗고있다는 점도 큰 성과다. 삼성전자의 경우 유럽과 미국시장에서 확실한 중고가 이미지를 심었으며 LG전자 역시 고부가 가치 제품 판매에 매달리고 있다. 애니콜·싸이언 등의 브랜드를 통해 한국 이미지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이동통신 단말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세계 최초의 IMT2000서비스인 cdma 1x 서비스 개시, 월드컵 기간 중 세계 최초의 cdma 1x EVDO(EVolution Data Only) 서비스 예정 등 전세계에서 가장 앞선 이동통신서비스를 발판으로 cdma분야에서는 항상 세계 최초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또 다양한 무선인터넷서비스를 기반으로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도 앞서가는 등 서비스가 단말산업을 이끌고 단말산업이 다시 서비스를 이끄는 선순환 궤도로 들어섰다.
정부(정보통신부)는 우리나라가 처음 상용화해 선진 경쟁력을 보유한 CDMA산업을 기반으로 올해 150억달러, 내년 220억달러, 2004년 300억달러, 2005년 350억달러의 이동통신 수출을 실현할 계획이다. 이는 2005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 예상액의 12%에 해당하는 수치로 이동통신이 국가 수출 주력산업으로 부상할 것임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는 오는 2005년까지 CDMA와 동기식 IMT2000 단말기 50%, 시스템 30%, 유럽형 이동전화(GSM) 및 비동기식 IMT2000(WCDMA)단말기 10%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달성하겠다는 당찬 포부다.
◇스타플레이어가 팀의 활기를 높인다=모바일 강국의 기틀을 이동전화 단말기가 구축했다면 개인휴대단말기(PDA)는 이러한 후광을 업고 발을 내딛는 중이다. 국내 PDA산업은 미국·유럽·일본에 비해 다소 늦은 편이지만 이러한 이동통신기술을 접목, 단숨에 세계적인 무선PDA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 PDA의 경우에는 PC와의 데이터 호환(싱크) 기능 등에 무게중심를 두었지만 국내 PDA는 이동통신 기능을 결합한 무선 인터넷 단말기 부분으로 초점을 맞췄다. 어쩌면 국내시장을 위한 독특한 제품일 수도 있는 이러한 시도는 전세계적인 무선 인터넷 열풍과 맞물리면서 다행히 세계적인 조류로 자리를 잡는 추세다.
특히 고급제품을 선호하는 국민특성과 맞물려 주문형비디오(VOD), 실시간 인터넷, MP3재생 등의 기능을 구현하는 멀티미디어 PDA제품에서는 선진국의 어느 제품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이를 보여주는 일례가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개최된 임베디드 콘퍼런스에서 전시된 PDA, 정보단말기 제품 4개 가운데 3개 제품이 삼성전자의 넥시오, 싸이버뱅크의 PC이폰, 임팩트라의 MPEG4 재생기 등 국내 제품이었다. 올해 초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동계 CES에서 기조 연설자로 나선 마이크로소프트는 국내 제품을 갖고 시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제 PDA강국이 되기 위한 준비운동은 끝났다. 이제 세계 PDA시장에서 선진업체와 당당히 겨루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러나 한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 이동전화단말기가 탄탄한 내수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키웠듯이 내수 진작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수만 바탕이 된다면 세계 PDA사용자들이 국내 PDA를 사용할 날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무선랜 관련 단말기=이동통신과 경쟁하면서 새로운 모바일 인프라로 부상하는 것이 무선랜이다. 무선랜은 IMT2000에 비해 최고 5배 이상 빠른 데이터 속도(11Mbps), 손쉬운 인프라 구축 등으로 차세대 모바일 인프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사무실·대학가를 중심으로 보급되다가 최근에는 한국통신·SK텔레콤·하나로통신 등 통신사업자들이 공중 무선랜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서비스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이 분야의 단말산업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PC업체들은 아예 무선랜이 장착된 PC를 잇달아 선보이는가 하면 PDA에도 무선랜 접목이 활발하다. 삼성전자·LGIBM 등이 지난해 말부터 무선랜을 아예 장착한 무선랜 내장 PC를 잇달아 출시,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무선랜 내장 PDA 제품도 올해 출시가 잇달을 전망이다. 세양통신이 무선랜을 내장한 PDA를 개발한데 이어 삼성전자·싸이버뱅크 등도 상반기 내에 관련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러한 무선랜 단말기도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제품이 선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시장선점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모바일 최강국이냐는 물음에 아직까지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5년 뒤쯤에는 누구나 한국을 모바일 최강국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국내 이동전화단말기 변천사
국산 이동전화단말기의 역사는 지난 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가 그당시 ‘SC1000’이라는 카폰을 처음으로 선보여 국산 휴대폰 시대를 개막했다. 그 당시만 해도 카폰의 가격이 차 한대 값에 맞먹어 카폰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차에서만 통화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거리를 활보하면서 전화를 거는 휴대폰시대를 연 것은 지난 89년 삼성전자의 최초 휴대폰 모델인 SH-100부터다. 이 당시 휴대폰의 무게는 무려 700g. 지금 출시되는 모델이 보통 70g 전후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10배의 무게였다. 한국 휴대폰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제품은 지난 94년 삼성전자가 출시한 SH770. ‘한국지형에 강하다’는 마케팅전략을 내세운 이 제품은 국내업체에는 못넘을 벽으로만 여겨졌던 모토로라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90년대 초반 정보통신부는 미국의 조그만 벤처업체인 퀄컴사와 도박을 시작했다. 세계에서 버림받은 이동통신 표준인 부호분할다중방식(CDMA)방식의 이동통신서비스 개발에 나선 것. 지난 96년 2월 LG전자는 국내 최초로 CDMA 휴대폰을 선보이면서 PCS폰 시대를 열게된다. 정부·한국전자연구소·국내 기업체들의 무모한 도박이 성공을 거두는 현장이었다. 이후 삼성전자·현대전자(큐리텔)·한화정보통신 등이 잇달아 PCS폰을 출시했고 팬택·텔슨·세원텔레콤 등의 중소업체들도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97년 10월 국내 5개 이동통신사업자들이 PCS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업체들의 전쟁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서비스 첫해에만 무려 700만대의 PCS폰이 판매됐다. 97년부터 99년까지의 이동전화단말기 경쟁은 주로 소형화, 배터리 수명시간에 맞춰졌다. PCS초기 200g에 육박하던 단말기의 무게는 99년 말 대부분 70g 이내로 가벼워졌으며 배터리 사용시간도 초기 반나절에 그치던 것이 10박 11일까지 버티는 제품까지 출시됐다.
2000년에는 음성통화 기기로만 여겨졌던 이동전화단말기가 무선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얻은 시기다. 통신사업자들의 무선인터넷 서비스 개시와 함께 이동전화단말기업체는 최대 144Kbps의 속도를 지원하는 cdma 1x 단말기를 쏟아냈으며 LCD크기도 무선인터넷에 적합하도록 4라인에서 8라인까지 확대됐다.
2001년에는 컬러단말기와 16화음 등 휴대폰의 패션화가 더욱 가속화되는 시기였다. 자신만의 벨소리, 캐릭터를 얻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컬러휴대폰과 벨소리를 지원하는 제품들이 출시돼 소비자의 선택폭을 늘렸다. 컬러휴대폰도 점차 STN방식에서 보다 생생한 화질을 전달하는 TFT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이동전화단말기는 어떻게 될까.
이동전화단말기가 단순 통신기기에서 탈피, 상거래 기구로도 사용될 것이며 인터넷은 물론 동영상 전달, 그리고 가정의 정보기기를 제어하는 핵심 정보단말기로 변모하는 시대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