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4월이 영화 마니아에게는 더 없이 풍성한 달이 됐다.
4월에 쏟아지는 신작 비디오, DVD타이틀은 모두 100여편. 영상 콘텐츠 업계에서는 전통적인 비수기로 여겨지는 4월답지 않은 출시 퍼레이드다. 완연한 봄기운이 영화 마니아들조차 산으로, 들로 빠져나가게 만들기 때문에 4월에는 영상 콘텐츠 신작이 많지 않은 게 보통. 그러나 올해는 5월말부터 개최되는 월드컵 행사로 인해 이 시기를 피해 일찌감치 4월에 신작 타이틀을 선보이는 제작사·배급사들이 많아졌다.
4월에 가장 주목받는 비디오는 ‘나쁜 남자’와 ‘디아더스’. 70여편이 쏟아져 나오는 DVD타이틀은 더 볼거리가 많다. ‘양철북’ ‘테스’ 등 고전 명작에서부터 ‘겨울연가’ 등 인기 TV드라마, ‘이것이 법이다’ ‘흑수선’ 등 영화 흥행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야심작, ‘뿌리’ 박스세트 등에 이르기까지 고르는 재미를 선사한다.
‘나쁜 남자’는 김기덕 감독 특유의 색깔과 영화배우 조재현만이 내뿜을 수 있는 독특한 어둠의 연기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극장 흥행성공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창가 깡패두목 한기는 자신이 매혹당한 여대생 선화에게 차디찬 경멸을 받자 복수심과 소유욕에 불타 그녀를 창녀로 만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52회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제6회 부산 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관객과 평단의 팽팽한 논쟁을 일으킬 만큼 화제를 모았다. 특히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은 아이러니하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결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극적이라는 평을 얻었다.
‘디아더스’는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스릴러물. 이혼한 전 남편 톰 크루즈가 제작에 참여해서 화제가 된 작품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공포스럽다는 점이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 영국 해안의 외딴 저택.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독실한 기독교도 그레이스(니콜 키드먼)와 빛에 노출되면 안되는 희귀병을 가진 두 아이가 살고 있다. 어느날 집안 일을 돌보던 하인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예전에 이 저택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세 명의 하인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이상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디아더스’의 묘미는 ‘유주얼 서스펙트’ ‘식스센스’ 등에서 느낄 수 있는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또 자극적인 방법보다는 서서히 관객을 공포로 몰고 가는 심리적인 방법을 택한 것도 특이하다.
베어엔터테인먼트가 출시하는 ‘더 바디’의 컨셉트도 독특하다.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이 영화는 예수의 존재와 죽음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하나를 소재로 택했다. 예수는 보통의 인간이며 따라서 부활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유대인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더 바디’는 그러나 심각한 종교영화가 아니라 이 같은 상상력을 미스터리 형식의 스릴러물로 전환시킨 작품이다. 흡사 2000년전 예수 무덤을 재현한 듯한 느낌을 주는 이스라엘 현장세트나 예수 부활과 관련된 각종 정보가 흥미를 선사한다.
유니버설픽처스의 ‘플린스톤’은 가족이 함께 볼 만한 비디오다. 전세계 3억5000만 관객을 동원한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의 속편으로 상상을 능가하는 기발한 유머가 상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라이베이거스의 석기시대 버전인 록베거스가 주 무대인 점이나 거부 록펠러를 연상시키는 칩 로커펠러, 영국의 로커 믹 재거를 흉내낸 믹 재갈 등은 이 영화의 충분한 양념 역할을 한다.
DVD타이틀 가운데서는 ‘양철북’과 ‘뿌리’가 눈에 띄는 신작이다. ‘양철북’은 1924년 당시 독일의 자유 무역 도시였던 단치히시를 배경으로 소년 오스카 마체라트의 유년기와 가족사를 다룬 귄터 그라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충격적인 내용의 명작. 주인공 오스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가 전개되면서 어린이의 시각으로 단치히의 독일제국 통합, 2차대전 발발과 나치 등 어른들이 저질러 놓은 세상의 모든 혼란을 체험하며 관찰한다.
‘뿌리’ 박스세트는 ‘뿌리’ 상영 25주년 기념으로 나온 DVD타이틀로 20여년 전 TV로 뿌리를 보며 자랐던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3디스크로 구성돼 있으며 25년 전 작품인 만큼 당시 제작필름과 같은 스페셜 피처는 없지만 ‘뿌리’의 탄생배경, 하이라이트 등을 통해 ‘뿌리’가 영화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TV드라마로 방영된 이 작품은 1977년 에미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최우수 남우조연상과 여우조연상, 감독상, 작곡상, 음향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78년 골든글러브 최우수 TV영화상도 수상한 바 있다. 아프리카에서 납치돼 노예로 팔려 미국에 건너온 쿤타킨테. 수없이 탈출을 꾀하지만 결국 모진 고문에 의해 불구가 된 후에야 자유로의 꿈을 접고 하녀 벨과 결혼해 딸 키지를 낳는다. 키지도 노예로 팔려 새주인에게 겁탈당해 임신하게 되는 등 이들의 고난은 대를 이어 계속되는데.. 아프리카 노예들의 힘겨운 삶과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밖에 3장의 디스크로 출시되는 ‘도베르만’도 DVD타이틀 마니아를 자극하는 타이틀이다. 뱅상 카셀,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도베르만’은 여러 무리를 이끌며 은행, 우체국, 현금수송차량을 상대로 강도짓을 하는 도베르만 일당과 이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형사 크리스티니의 쫓고 쫓기는 상황과 치열한 두뇌싸움이 재미있게 그려졌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