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장 효율성이 높아진 업종을 꼽으라면 단연 금융산업이다. 예전엔 창구에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거나 현장 영업을 나가더라도 지인을 통해 보험가입을 종용하던 것이 전부였다. 경험과 노하우, 인간관계를 동원해 돈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장사라는 게 전통적인 사고였다. 그러나 똑똑한 모바일 기기가 영업수단으로 등장한 요즘에는 모든 금융영업 관행이 현장을 찾아가는 지식형 업무로 확연히 달라졌다. 노트북·PDA·휴대폰에 각종 상담정보와 금융상품정보, 고객정보를 내려받아 보다 질높은 정보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지금 금융 ‘모빌리언스’들에겐 모바일기기가 전쟁터의 무기나 다름없다. 조만간 금융기관 영업사원이 창구에 앉아있는 모습은 오히려 생소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예전의 여유를 반납해야 하는 불행한 시대에 살게 됐다.
모바일이 단지 영업 방식만 바꾼게 아니다. 고객들의 서비스 채널도 순식간에 ‘걸어다니는’ 환경으로 돌려 놓았다. 무선데이터 단말기를 들고 다니며 적당한 매매시점을 놓칠세라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지난 99년 이후 주식시장 활황을 업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식투자에 뛰어들었고 무선단말기는 대박을 꿈꾸는 이들에게 필수품이 돼 버렸다. 이제는 무선데이터 단말기에 이어 휴대폰·PDA도 상당량이 보급됐다. 아직은 불편함이 많지만 왑(WAP)기반 휴대폰을 통해 예금조회나 계좌이체와 같은 은행거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다. 한 사람이 많게는 수십장씩 갖고 있는 신용카드도 서비스 채널이 휴대폰으로 열리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거래내역조회·현금서비스신청 등 일부 제한적인 서비스만 가능했지만 지금은 카드 발급신청은 물론 분실·도난 카드의 부정사용 여부도 휴대폰으로 알려준다. 보험사들은 현재 시판중인 인터넷 보험상품 가운데 이동중에도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는 것을 골라 모바일 상품으로 개발중이다.
금융권의 이같은 변신은 자발적인 의지보다는 IT가 빚어낸 외부 환경의 급변과 이에 따른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시대의 변화를 미리 간파하고 금융산업의 주변부로 뛰어든 IT업계가 선수를 친 것. 그 중에서도 무선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는 이동통신사업자들이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다. 이통사들은 휴대폰에 칩이나 전자지갑, 가상계좌 형태로 선·후불 지불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금융업종에 침입하고 있다. 무선 지불결제 서비스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일종의 ‘유사’ 금융업이라며 금융업계가 비난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추세는 거스를 수 없는 법. 새로운 모바일금융 시장을 겨냥한 IT업계의 시도는 기술과 아이디어에서 최근 빠른 진화를 거듭해왔다. 휴대폰 통합결제 전문업체들이 편리한 과금서비스를 생각해 낸 덕분에 요즘 무선지불 사업모델은 가상계좌·폰빌 등 더욱 참신한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스마트카드에서 적외선(Ir), 블루투스, 고주파(RF), 심지어 휴대폰 화면의 LCD 바코드에 이르기까지 무선 지불결제서비스에 응용되는 기술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전문업체들의 시장 진입은 어느샌가 모바일금융 시장의 언저리를 그들의 차지로 만들어가고 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해외사례1- 은행·증권부문
미국의 금융 1번지 월스트리트에서 활동하는 증권 중개인(브로커)과 은행원(뱅커)들이 필수품처럼 들고 다니는 것이 있다. 바로 캐나다의 중소 벤처기업 리서치인모션(http://www.rim.net)이 개발한 ‘블랙베리’라는 양방향 무선호출기다. 우리나라에서는 휴대폰에 밀려 거의 모습을 감춘 무선호출기가 24시간동 안 인터넷 등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미국 직장인들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가트너그룹이 최근 잇따라 펴낸 2개의 보고서(미국 소매금융 회사들의 이동 전자상거래 도입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블랙베리는 특히 미국의 은행 및 증권 등 금융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증권 브로커와 뱅커들은 블랙베리만 들고 다니면 고객회사 또는 길거리 어느 곳에서나 환율 및 주식시세를 확인한 후 곧바로 주식거래는 물론 계좌이체 등 다양한 금융업무를 원스톱으로 해결하고 있다. 따라서 블랙베리는 바로 걸어다니는 증권사 객장이요, 은행도 부러울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또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지고 있는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http://www.gs.com)가 최근 블랙베리로 대표되는 무선인터넷 기술을 접목해 ‘걸어다니는 은행(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에서도 최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지난해부터 미국에 있는 수천명의 직원은 물론 일부 투자자들에게도 블랙베리를 지급해 활용한 결과, 신속하고 정확한 양방향 통신이 가능해져 업무효율뿐만 아니라 고객 만족도도 크게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 서비스는 또 아무리 오랫동안 사용해도 데이터 통신 요금이 1인당 월평균 70달러(약 9만원)를 넘지 않기 때문에 투자대비 효과도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최근 미국에서는 무선호출기 등으로 은행 계좌이체와 증권거래 등 금융 업무를 보고 있는 고객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 최근 100만명 선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S 랜드리 분석가는 “미국에서 이동통신 단말기로 초고속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는 2.5세대(G) 이통 서비스가 속속 선보이는 올해 하반기부터 모바일 금융 이용자 수도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해외사례2-카드부문
신용카드는 어느 금융업종보다도 모바일 비즈니스의 도입에 적극적이다.
특히 비자인터내셔널은 이미 지난 2000년 3월 무선서비스 업체인 아에더네트웍스와 제휴해 각종 무선 단말기를 지원하는 신용카드 지불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비자·아메리칸익스프레스·마스터카드인터내셔널 미국의 3대 신용카드사와 일본 유수의 카드사인 JCB 등 4개사는 지난해 11월 모바일 비즈니스 표준을 제정하기 위한 컨소시엄인 ‘모바일결제포럼(MPF)’을 구성했다.
비자의 경우 현재 아에더와의 제휴로 무선호출기·휴대폰·PDA 등의 각종 무선 단말기로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e월렛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월렛은 소비자가 자신의 이름과 원하는 배달장소의 주소, 신용카드 번호 등만 입력하면 각종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로 비자가 이미 제공하던 온라인 디지털 월렛 서비스와 유사한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e월넷은 이밖에 실시간 주식시세, 금융 데이터, 주식 거래, 인터넷 접속 등의 각종 부가적인 무선 데이터 서비스도 제공한다.
양사는 또 온라인 결제 관리 서비스를 위해 사이버빌을 설립, 스테이터스팩토리닷컴(StatusFactory.com)을 통해 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비자는 각종 휴대 단말기를 이용해 이 사이트에 접속, 보안이 유지된 상태에서 각종 결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MPF에 참여한 신용카드사들은 고객들이 휴대폰으로 제품을 구입한 후 결제까지의 전과정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카드 회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암호와 개인정보 보안 등의 기술까지 모두 공동으로 개발하고 상호 호환도 추진하게 된다. MPF는 이밖에 모바일 비즈니스의 보급확대를 위해 다른 금융기관을 비롯해 통신 사업자, 무선 단말기 제조업체, 소매 업체,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자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카드사들이 모바일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소액 결제가 모바일 비즈니스의 가장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로 부상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통신업체, 컴퓨터업체, 인터넷업체 등 IT 관련 기업들은 이 시장을 놓고 치열한 시장 선점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례로 노키아와 IBM은 지난해 핀란드의 모바일 쇼핑 프로젝트를 위해 제휴키로 했다. 또 빈즈나 플루즈 등의 웹 대체화폐 업체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