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의 두루넷과의 통합협상 결렬선언은 그동안 통신업계 일각에서 강력히 제기돼온 제3세력론의 무력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와 업계에서는 그동안 거대 통신그룹인 KT·SK텔레콤을 두 축으로 하고 나머지 한 축은 하나로·두루넷·LGT·파워콤이 제3세력을 형성, 3강체제를 가져가는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그러나 하나로가 두루넷과의 통합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나선 이상 당분간 제3세력에 관한 논의는 수면하에서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영화를 앞둔 파워콤의 지분매각 협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배경=두 회사의 협상논의 중단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즉 통합에 대한 시각이 현격하게 달랐다는 얘기다. 하나로의 경우 통합의 시너지효과보다는 일단 외자유치 등 자금의 필요에 의해 통합을 추진한 것이 1차적 목적이었고 소프트뱅크 역시 국내에서 통신사업을 직접 하겠다는 것보다는 이를 통한 이윤회수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윤회수를 위해서는 분리매각이 최상의 방법이었고 이중 전용회선 부문을 SKT텔레콤을 통해 해결했다는 지적이다. 소프트뱅크의 이같은 결심 배경에는 하나로가 당장은 반발하더라도 이후에는 결국 두루넷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등 일종의 부가통신부문을 인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하나로 역시 현재로선 뚜렷한 해답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나로 관계자가 ‘소프트뱅크측이 SKT와의 MOU를 철회한다면’이란 단서를 달아 협상에 나설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상황판단에 연유한다.
◇하나로·두루넷 입장=하나로통신은 두루넷의 행위에 불신감을 넘어 배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두루넷이 하나로와 통합협상을 벌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SK텔레콤과 비밀리(?)에 통합협상을 하는 것은 앞으로 통합을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 통합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실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SK텔레콤에 전용망을 팔겠다는 구상이 가당한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정부가 구상중인 ‘통신3강’ 구도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며 이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두루넷은 이같은 하나로측의 반응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중플레이론’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지금까지 통합협상을 벌여왔으나 하나로측이 성의(?)를 보이지 않아 지지부진했고 통합협상 조건에도 자산에 대한 조건은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빌딩을 포함한 자산매각에 대해 수차 공언해왔으며, 기업용 전용회선 역시 자산의 일부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산을 매각하는데 하나로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SKT, 뭘 노리나=SK텔레콤은 두루넷과의 전용회선 인수에 관한 MOU 체결만 했을 뿐 아직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번 MOU를 통해 이동통신 백본망이기는 하지만 두루넷의 기업전용회선을 인수함으로써 기업 대상의 e비즈니스를 펼쳐나가겠다는 SKT의 구상이 현실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SK텔레콤은 초고속인터넷 부문을 매각했지만 KT에 대응하기 위해 유선사업 및 위성DAB 등 광대역주파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상태다. 만일 시내망이 강점인 두루넷의 전용회선을 가져가면 대기업 등의 비즈니스 유저에 대한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커짐으로써 본격적인 유무선통합사업자의 구도에 한발 다가서게 된다.
◇전망=두 회사의 통합논의는 당분간 수면하로 잠복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소프트뱅크측이 유리한 가격조건을 제시하면 하나로와 전용선을 뺀 두루넷의 사업부문을 인수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두 회사의 상호 불신감이 정점으로 치달아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잠복기를 거칠 것이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는 판단에 이르면 재논의에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로통신은 ‘수천억원의 부채만 가진 껍데기’라는 말로 두루넷과의 통합논의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어 이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나로통신측은 파워컴 인수협상에 주력한다고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하나로통신이 무리한 가격으로 파워컴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두루넷의 전용선 매각에 반발하는 하나로통신과 실리를 찾으려는 두루넷, 기업대상의 e비즈니스시장을 염두에 둔 SK텔레콤간 실리를 노린 물밑 협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새로운 안이 도출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유력하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