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들은 정부가 정보화 지원정책의 실효성을 위해서 사후관리 감독기능 강화와 자금지원 확대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또 정보기술(IT)업체와의 계약과정 불공정성을 최대한 줄이고, 중소기업의 현황과 필요에 대한 정확한 사전조사를 철저히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들은 이와 함께 ‘정부 건의사항 및 희망하는 지원분야’라는 설문조사를 통해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정보화 지원으로 인해 회계 등 단위업무별 기초 소프트웨어를 갖추는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지원받기를 희망하는 분야에서 기초 소프트웨어 지원 대신에 그룹웨어, 전사적자원관리(ERP) 등 기업용 솔루션 지원을 요구하는 응답이 2배 이상 많았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번 설문결과를 분석해 보면 중소기업들은 현재 초보적인 수준을 점차 벗어나기 시작해 이제는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통합적으로 혁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협업IT화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으로 드러나 업종 전반의 e전이(transfortmation) 단계에 단기간에 도달하기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지원정책 문제점 및 사례 = 설문응답 기업을 사후 방문 혹은 전화 보충 취재를 통해 살펴본 결과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중소기업 정보화 지원정책의 문제점으로 △사후지원 미비 △구축 솔루션의 기업 특성 미반영 △획일적인 지원 규모 △수혜기업 선정을 위한 평가작업 부족 △지원과정에 대한 관리와 배려 부족 등을 지적했다.
<사례1> 가장 지적을 많이 받은 부분은 사후지원이 미비한 경우다. 지난해 ERP 도입을 위해 자금을 지원받은 한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연간 매출액 150억원) 담당자는 “정부의 투자사업 기간완료에 대한 부담 때문에 충분히 회사의 프로세스나 특성들이 반영되지 않고 서둘러 완료 보고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축이 완료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많은 부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사후적인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현재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례2> 솔루션을 구축했지만 기업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다. 중소기업들은 해당 업종과 지역, 정보화 수준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특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커스터마이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환기구 제조업체는 최근 자재관리나 재고관리, 장부관리 등 여러가지 문제에서 표준화가 마련돼 있지 않아 이중작업 등 많은 문제를 느끼던 중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해 준다고 해 한 업체의 ERP 솔루션을 구축했다. 그러나 구축 과정에서 회사 업무 프로세스와 솔루션의 구성이 너무 달라 커스터마이징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현재 테스트 단계에 돌입했지만 회사 직원들은 수기와 ERP 시스템 입력을 동시에 해야 하는 부담감을 감수하고 있다.
<사례3> 기업마다 규모가 다름에도 정부가 획일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현재 ERP 구축 지원의 예를 보면 지원규모가 대략 2000만원 수준으로 획일적이다. 기업의 규모에 따라 컨설팅 등 투입되는 비용이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지원프로그램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ERP 도입을 추진 중인 한 진단용 X-선장치 업체의 ERP추진팀장은 “중소기업의 규모와 특성을 고려한 보다 넓은 범위의 지원금액 규모를 설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다양한 규모의 ERP 패키지 및 컨설팅 프로그램을 유도해야 보다 많은 기업들이 현실에 맞게 ERP 도입을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례4> ‘지원받을 만한’ 기업을 선정했느냐의 문제다. 정보화에 대한 의지와 일정 조건이 갖춘 기업에 적절한 내용이 지원됐어야 함에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사례가 간간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한 환경관련 중소업체 관계자는 “사실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무료로 회계 소프트웨어를 지원해 준다기에 받았지만 설치 약속을 한지 한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그냥 놔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e비즈니스 컨설팅을 받았다는 한 반도체 제조업체의 전산실 관계자도 “컨설팅 내용이 너무 형식적이어서 실제 업무에 적용할 부분이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정부의 숫자 늘리기와 IT업체의 실적올리기라는 필요가 맞물리면서 중소기업 정보화를 위해 쓰여져야 할 소중한 자금이 허비된 대표적인 경우로 지적된다. 이런 예는 중소기업에 무료로 지원되는 프로그램일수록 빈번하다는 것이 업계관계자의 설명이다.
<사례 5> 지원과정에 대한 관리와 배려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다. 설문조사 결과 중소기업들은 정부지원프로그램에 신청하고 심사를 통해 지원받는 과정 곳곳에서 힘들어했다. 5월 말 ERP 구축을 완료할 예정인 전자제품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ERP 도입을 내부적으로 결정해 지원을 신청했지만 제품 선택 단계에서 매우 어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제품의 특징이나 장단점을 파악해 우리 기업에 가장 적당한 제품을 선택하는 게 어려웠다”며 “이 부분에서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들은 경험있는 정보화 전문인력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임에도 이를 무시하고 지원과정에서 이에 대한 조언을 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당한 것이다.
◇정부 건의사항 = 중소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보다 실효성을 가지려면 어떤 부문에서 노력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중소기업들은 사후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데 37%로 가장 많은 의견을 제시했다. 만족도 조사결과에서 사후지원 만족도가 가장 낮게 나타난 것과 일맥상통한 결과다. 설문에서 중소기업들은 아무리 훌륭한 솔루션을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사후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를 관리·유지하고 각종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한 상태에서 솔루션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는 중소기업의 경제적 어려움을 반영해 자금지원을 확대해 달라는 요구가 22.9%를 차지했다. 정보화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이를 추진하는 데 경제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나올만한 건의사항이다.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지원 예산이 제한적임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적절한 기업에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방안을 추진하기를 기대했다.
이밖에 IT업체와의 계약과정에서 수혜기업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11.8%), 중소기업의 현황과 필요에 대한 정확한 사전조사(9.7%), 컨설팅·교육·솔루션 등에 대한 감리 강화(8.7%), 세제지원 강화(6%), 수혜기업 선정을 위한 정확한 평가(3.7%) 등으로 나타났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
<소박스-중소기업이 원하는 것 >
중소기업들이 응답한 ‘정부에서 향후 지원해 줬으면 하는 분야’를 분석해 보면 현재 중소기업의 e전이(transformation) 수준을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초 소프트웨어를 갖추는데 주력하는 초기단계는 서서히 벗어나고 있으면서도 아직 동종업계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화를 진행하기는 힘들 것으로 분석된다.
설문에 앞서 최근 정부의 IT화 지원정책 중간결과를 보면 지금까지 기초 소프트웨어 공급을 원했던 업체들이 대다수를 점했다. 상대적으로 ERP 솔루션과 협업IT화에 대한 지원을 바라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토대로 보면 앞으로는 기업생산성과 직결되는 그룹웨어, ERP 등 솔루션 지원이 최대 관건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기업용 솔루션 지원을 희망한다고 응답한 경우가 77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생산공정의 IT화 지원이 71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는 이제 중소기업도 기초 수준에서 벗어나 기업의 업무 효율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정보화 전문인력 육성지원이 63건으로 3위를 차지한 것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여러 중소기업들이 ERP를 도입했지만 일정 정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는 경우의 대부분 이유가 바로 교육체제 미비 때문이다. 인프라는 갖춰 놓았지만 이를 활용하는 직원들의 마인드가 갖춰져 있지 않고 더욱이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할 인력조차 없었다. 단지 구축 자체에만 몰입했던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 정보화 방향 수립을 위한 컨설팅과 IT 활용능력 및 마인드 제고를 위한 교육 등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기초정보 소프트웨어 지원과 인프라 지원의 경우 많은 기업이 이미 이 단계까지 와있으므로 희망 빈도가 적게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아직도 중소기업의 정보화 수준이 개별적·파편적이라고 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협업IT화 지원을 바라는 응답이 16건으로 가장 낮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론 협업IT화가 중소기업이 별도로 추진할 수 있는 단순한 정보화가 아니라 대기업을 비롯해 여러 공급망간의 협력이 있어야 이뤄져야 하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협업IT화에 대한 인식 자체도 높지 않다는 것은 전체 산업을 놓고 볼 때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는다. 비록 중소기업들이 개별 정보시스템을 갖춘다 하더라도 동종업계 혹은 전 산업에 걸친 정보화로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전체 산업의 e전이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