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전자무역 환경에 대비한 국내외 금융권의 대응속도가 더해지고 있다. 전자무역이란 결국 과다한 문서·수작업이 소요되는 결제·물류업무를 인터넷 환경으로 정비하는 것. 이 가운데 결제는 무역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부문으로, 시대적 추세를 인식한 은행들의 노력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은행간국제결제망(SWIFT)과 해외 대형은행을 비롯, 국내 선발은행들은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전자무역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고 인프라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 또 향후 전자무역 금융시장을 놓고 외환·조흥·한빛 등 선발은행의 시장선점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조만간 은행간에도 서비스 격차가 벌어질 전망이다. 다만 수출입기업 당사자나 물류업체들이 아직은 관망하는 입장이어서 당장 무역금융시장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변화하는 환경=지난해 11월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은행위원회가 제정한 전자신용장통일규칙(eUCP)이 이달 1일부터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민간부문이 꾸준히 시도해왔던 무역서류의 전자문서교환(EDI)방식이 드디어 국가간의 공신력을 얻은 셈. 이에 따라 현재 전자무역 환경을 견인하고 있는 SWIFT·볼레로·트레이드카드·아이덴트러스 등과 각국 은행들의 금융서비스 확산노력도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여기다 아이덴트러스와 독점계약을 맺고 있는 SWIFT의 스위프트넷도 올 하반기부터는 인증사업자를 다원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인터넷 결제망인 스위프트넷의 보급을 촉진하고 무역금융에 필요한 전자서명 인증서비스를 대폭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조흥은행 전인환 대리는 “세계 무역시장에서 제도적 환경은 전자무역을 뒷받침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올해 각국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상용화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외환·조흥·한빛 등 선발은행들이 연내 아이덴트러스·트레이드카드·볼레로 등 각종 전자무역서비스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스위프트넷 채용계획을 수립키로 한 것은 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시장선점 경쟁=전자무역 환경의 개막에 따라 선후발은행간 무역금융 서비스 시기에서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외환·조흥·한빛은행 등 무역금융 취급비중이 큰 은행들은 이미 아이덴트러스나 볼레로, 트레이드카드 등 다양한 전자금융서비스 채비를 갖추고 하반기 시범사업을 준비중이다. 특히 외환은행은 신용장거래에 강점이 있는 볼레로, 현금거래 방식에 장점이 큰 트레이드카드, 국제 전자인증서비스인 아이덴트러스 등 상용화된 서비스를 대부분 갖추고 있다. 조흥은행도 외환은행과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이같은 무역금융서비스와 한일간 e트레이드허브 등 국가간 시범사업도 추진중이다.
이에 비해 나머지 은행들은 여전히 사업성에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전자무역 서비스 도입시기를 저울질하는 형국이다. 최근 아이덴트러스와 가입협상을 추진한 신한·하나은행 등 8개 은행이 추후 협상과정을 순조롭게 이끌더라도 외환·조흥은행 등 선발은행이 가입후 시스템 완비에 1년여를 끌어온 점을 감안하면 결코 쉽지 않은 행보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시기상조=이같은 추세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전자무역이 활성화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 각국의 수출입 당사자 기업이나 물류·결제에 참여하는 사업자들의 준비도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국내 도입된 볼레로가 아직 상용거래 실적을 못내고 있는 것이나 1년 이상 서비스를 제공한 트레이드카드도 현재 월평균 20∼30건의 거래실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빛은행 김종완 e커머스센터장은 “아직은 이용기업 스스로가 볼레로나 트레이드카드, 아이덴트러스와 같은 전자무역 서비스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있다”면서 “그러나 추세는 거스를 수 없는 만큼 언젠가 기업들이 요구하는 시점이 오면 시장환경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