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일곱 딸들/브라이언 사이키스 지음/전성수 옮김/따님 펴냄
사람은 누구나 ‘나는 누구며 어디에서부터 왔는가’라는 고민을 한번쯤 가져본 적이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나의 부모는 누구며, 조부모는 누구며, 증조부는 누구며 하는 식으로 따라가 보면 언젠가는 얻을 수 있는 해답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가 언젠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거나 불분명한 시점에 이르러 결국 종국의 해답은 얻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족보라는 형태로 뼈대(?) 있는 가문에서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이는 몇 대조 이상 올라간 연후에는 대체로 자의적으로 역사적인 유명인의 몇 대손 식으로의 기록 외에는 이를 수 없다.
최근 서양에서도 뿌리를 찾는 관심이 높아져 자신의 조상을 찾아주는 사업 또한 등장한 모양이다. 어떻든 이 동서양을 막론한 혹은 개인적인 관심이건 고고학·인류학적 관심이건 간에 최근까지는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유전학의 발전으로 인해 이런 의문을 풀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고 있다.
‘이브의 일곱 딸들’이란 책에서 인류 유전학자이기도 한 저자 브라이언 사이키스는 최근의 유전학 발견을 인용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재미있는 결론을 도출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거의 모든 유럽인은 저자가 ‘이브의 일곱 딸’이라 별명을 붙인 일곱명의 여성들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토콘트리아 DNA라는 독특한 DNA를 분석해 이 비밀을 밝혀낸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신체의 모든 세포 속에 존재하며 어머니로부터 딸에게 거의 변하지 않고 전해진다고 한다.
이는 보통 DNA와는 달리 세포의 핵 바깥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에 존재하며 일반적인 DNA(흔히 게놈 프로젝트에서 말하는)와는 달리 그 구조가 매우 안정돼 있으며 지극히 간단한 구조를 갖고 있어서 이 DNA 고리의 돌연변이를 정량화하고 분석함으로써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의문을 풀어간다.
여기까지 들으면 또하나의 따분한 과학서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매력은 흡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는 듯한 재미있는 과학소설이 주는 느낌이다. 후반부도 어려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저자의 탁월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생명과학에 대한 문외한이 읽어도 전혀 어렵지 않은 즐거운 책이다.
DNA 분석을 통해 인류 역사를 밝히는 데 있어서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학자이기도 한 저자의 뛰어난 상상력·표현력은 부족한 문장력을 ‘공학자’라는 핑계에 묻어버리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이다.
94년 알프스 산간에서 발견된 얼어붙은 사체가 5000년 전 인간임을 밝히고 아일랜드에서 이 설인과 똑같은 DNA를 가진 ‘후손’을 찾아내 세상을 놀라게 한 저자가 주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인의 대부분이 2500년 전에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다. 잠시 얼뜬 민족주의에 도취된 필자에게 이 책의 저자는 전세계 인류가 33명의 여인을 공통조상으로 한 후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세계가 한 가족’이라는 도덕적 명제에 명쾌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꾸짖는다.
‘이브의 일곱 딸들’은 독자에게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책이라고 생각든다.
<연세대 김영용 교수 y2k@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