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나노기술 현장을 찾아서>(14)인터뷰-IBM 취리히연구소, 폴 사이들러 박사

 IBM 취리히연구소의 폴 사이들러 박사는 취재진을 맞아 민간기업체가 바라보는 나노기술의 비전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는 무조건 작게 만드는 것이 나노기술의 목표가 아니며 여태껏 배제해온 다양한 과학지식을 동원해 기존 생산기술보다 성능·가격면에서 비교우위를 달성하는 것이 지상과제라고 강조했다. 역시 정부산하 국책연구소와 민간기업의 나노연구는 접근방식부터 달랐다.

 ―IT산업을 이끌어온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나노기술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떤 기술이 한계점에 달하면 반드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합니다. 과거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바뀐 것이 대표적 사례죠. 현재 반도체기술은 생산라인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 신제품을 앞서 내놓고 있지만 실험실에선 더 이상의 성능향상이 벽에 부딪힌 상태입니다. 향후 반도체기술은 스핀트로닉스, 콴툼컴퓨팅 등 나노기술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무어의 법칙은 유지되기 힘듭니다.

 ―나노기술이 상업적으로 양산라인에 적용될 때 어떤 형태로 발전할까요.

 ▲현재 나노연구는 실리콘 가공기술처럼 큰 물체를 깎아 작게 만드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주류지만 경제성이 떨어집니다. 반면 자연현상을 이용해 분자구조를 형성하는 바턴업(bottom-up) 방식은 상업성면에서 단연 뛰어나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실용화되는 나노기술은 두 가지 접근방식이 혼합된 형태라 생각합니다. 이는 기존 실리콘 가공기술(top-down)이 나노시대에도 계속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죠. 현재 특수반도체에 박테리아를 집어넣어 번식시키면 생화학적으로 나노단위의 미세회로가 형성되는 하이브리드(top-down+bottom-up) 나노기술도 개발되는 상황입니다. 기업체 입장에서 기존 반도체 설비투자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나노기술은 절대 실용화하진 않아요.

 ―반도체에 세균을 집어넣다니 대단한 발상이군요. 한국의 나노연구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IBM에 들어와서 민간업체 연구자로서 매우 중요한 원칙을 배웠는데 그건 비용(Cost)이 기술보다 앞선다는 것입니다. 기업체의 나노기술연구는 기존 생산기술보다 비용면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과제이며 이런 목표를 위해 새로운 과학지식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나노연구자에겐 필수적입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