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공급권은 확보했지만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최근 한 통신사업자의 공중망 무선LAN사업 장비공급자로 선정된 업체 관계자의 선정 소감이다. 액세스포인트(AP) 장비만 2만여대로 무선LAN 단일 사업으로는 최대 규모지만 공급 가격이 너무 낮아 수익성 측면에서는 득볼 것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던 무선LAN 시장에 최근 감돌고 있는 이상 기류의 원인으로 저가 입찰을 가장 먼저 꼽는다.
지난달 업계의 지대한 관심속에 치러진 KT의 공중망 무선LAN 장비사업자 선정입찰은 국산과 외산업체간 치열한 경합이 벌어질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국산업체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대부분의 외산업체들은 아예 제안서를 제출하지도 못했으며 일부 업체는 장비성능테스트(BMT)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러한 국산업체들의 선전 뒤에는 국산 장비의 성능 개선도 있었지만 선정과정 초기부터 흘러나온 15만원대의 장비 예상구매가격에 질려 사력을 다하지 않은 외산업체들의 ‘태업’도 한 몫 거든게 사실이다.
한 외산업체 관계자는 “KT라는 대형 고객이 벌이는 사업이기 때문에 욕심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 전해져 아예 BMT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외산업체로서는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레퍼런스사이트를 확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업체들의 사정은 다르다. 삼성전기를 제외하고는 시장에서 인지도가 부족한 국내 업체들로서는 KT가 가져다주는 홍보효과가 절실했기 때문에 수익성 악화가 분명함에도 공급가격을 낮추는 악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KT는 낮은 가격에라도 총 5만여대에 이르는 AP장비를 구매해 시장의 돌파구를 열어줬지만 나머지 통신사업자들은 무선LAN 사업을 놓고 타사 눈치를 살피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경쟁적으로 시범서비스를 시작할 때만해도 무선LAN 사업에 적극성을 보였지만 3, 4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 KT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공중 무선LAN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하나로통신은 본격적인 핫스폿 확대를 위해 장비공급자 선정에 나섰지만 지난달 BMT를 마치고도 가격입찰은 커녕 아직 구매규모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당초 5월 서비스 상용화를 계획했던 데이콤도 상용화 전환 여부를 재검토중이며 지난해 12월 시범서비스를 시작한 SK텔레콤은 다른 유선통신사업자들의 실적이 시원치 않자 본격적인 사업전개 시기를 놓고 고심중이다.
이처럼 무선LAN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공중망 무선LAN 서비스가 부진하자 장비업체들의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사업자들을 통해서만 400억∼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했지만 목표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업체들은 기업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공중망 시장을 사실상 포기한 외산업체들은 물론 공중망 시장에 주력해온 국내업체들도 기업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기업시장도 별반 나을게 없는 상황이다. 일부 보험사, 유통업체들이 무선LAN을 도입하고는 있지만 기존 유선 인프라 교체에 대한 부담, 데이터 보안에 대한 우려 등으로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최근 영업사원들을 위해 무선LAN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생명보험사 K사 관계자는 “금융업무라는 특성상 보안이 입증되지 않은 무선LAN 도입은 다소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라며 “도입을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렇듯 국내시장의 성장이 더디자 일부 발빠른 국내업체들은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이들 업체로서는 해외 유통망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무선LAN 사업에 필수적인 사후관리망 구축은 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