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책임자(CEO)냐, 최고기술책임자(CTO)냐?’
테헤란밸리를 축으로 송파, 분당에 포진한 70여개의 반도체 설계 벤처기업 사장들은 요즘 ‘자리’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4∼5명에 불과했던 직원수가 20∼30명으로 늘어나면서 조직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
더욱이 그동안 목을 매달았던 기술들이 하나둘 상품화되면서 마케팅과 영업을 전담할 조직과 재정관리를 맡아줄 전문인력 확보 문제가 그들에게 적지않은 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엔지니어 출신 사장들의 가장 큰 고민은 경영권 문제. 엔지니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기술개발 이외에는 지식과 네트워크가 미비해 회사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그 때문인지 최근 경영권을 전문 경영인들에게 넘겨주는 벤처 사장들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네트워크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G사의 K사장은 대기업 마케팅 인력 출신의 전문경영인을 영입, CEO 자리를 내주고 기술담당사장(CTO)으로 물러났다. K사장은 퇴임변에서 “회사의 미래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기술개발에 매진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 부품을 개발하는 K사도 최근 외국계 한국지사 마케팅 담당자를 CEO로 영입하고 기존 사장은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물러났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전문경영인 제도가 자칫 잘못하면 벤처의 장점을 희석시키고 채 성장하지 않은 회사를 경영권 이양으로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또 새로운 전문경영자가 회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융합에 문제가 생길 경우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경영 전반을 관리하고 회사를 대표하는 CEO라는 자리가 쉽지는 않다”면서도 “일관되게 창업정신을 이어가고 조직의 융화를 위해서는 재무담당경영자(CFO)를 영입해 보조를 받고 CEO와 CTO를 겸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에도 벤처기업 사장들의 효율적인 경영권 확립과 조직개편에 대한 고민은 늘 숙명처럼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