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라는 공룡이 있는 한 온라인 게임산업의 발전은 요원하다. 온라인 게임업체 CEO들은 종종 이런 회색빛 전망을 내놓는다.
절대강자가 시장을 독식하면서 후발주자는 더이상 먹고 살 여지가 없다는 게 이들의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런 CEO들도 정작 뒤돌아서면 ‘리니지’ 아류작 개발에 열을 올린다. 원론적으로는 시장의 다양성을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문제로 돌아오면 꼬리를 내린다. 이면에는 자신도 ‘리니지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국내 온라인 게임산업이 안고 있는 딜레마 중 하나다.
실제 지난해 새로 선보인 국산 온라인 게임은 140여종에 달한다. 지난 2000년 30여종의 신작 게임이 쏟아진 것과 비교하면 무려 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한마디로 산업이 ‘빅뱅’되고 있는 셈이다. 외형적으로 성장했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평가는 달라진다.
지난해 신작 게임 140여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리니지’로 대변되는 롤플레잉 게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70여종이 넘는 작품이 ‘제2의 리니지’를 꿈꾸며 쏟아진 아류작들이다. 이는 국내 시장환경이 ‘리니지’를 중심으로 크게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온라인 게임시장 규모는 2500여억원으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리니지’를 서비스하고 있는 엔씨소프트가 올린 매출은 전체 50%에 달하는 1247억원이다. 올 1분기 시장상황도 마찬가지다. 올 1분기 온라인 게임시장 전체 780억원(추정치) 가운데 엔씨소프트의 매출은 400억원(51%)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국내 온라인게임시장은 커진 만큼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게임 개발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편식현상이 깊어지면서 국산 온라인 게임의 국제경쟁력도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 독창적인 게임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수출경쟁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게임들이 수출에 나서지만 내수시장과 마찬가지로 ‘리니지’ 등 몇몇의 게임만이 재미를 보고 있다.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을 선호하는 국가도 그리 많지 않아 수출할 수 있는 국가도 한계가 있다. 한마디로 편식현상은 국산 온라인 게임을 ‘국내용’으로 전락시키는 ‘원흉’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40여개 신작 게임 가운데 돈을 번 게임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것도 따지고 보면 편식 개발이 빚은 출혈경쟁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온라인 게임사업을 두고 ‘사업이 아니라 도박’이라는 자조의 말까지 나돌 정도다. 일선의 CEO들 가운데는 이같은 모순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입맛’이 너무 굳어있는 이상 어쩔 수 없다면서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소비자들의 편식도 문제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업계의 시도가 거의 없는 것이 더 문제다.
한 관계자는 “리니지류 게임만 양산하면서 새로운 온라인 게임 유저를 유입하는데 업계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다”며 “한국영화가 다양한 국내 소비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해 르네상스를 맞듯 국산 온라인 게임도 맹목적인 베끼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마케팅 기법으로 새로운 도약을 예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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