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걸어가야 할 길은 논란의 여지없이 명확하다. 빅4에 진입한 삼성전자는 이미 뚜렷한 비전을 세워두고 있다. 고급 브랜드 전략이 그것이다.
“궁극적으로 노키아를 제치고 1위가 되는 것이 목표지만 결코 규모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그보다는 고품질의 고가제품이라는 브랜드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은 애니콜을 상위 30%의 제품군에 포진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양적으로 1위가 되기보다는 질적인 1위가 삼성이 추구하는 본질이다. 여기에는 기술과 품질에 대한 자신을 앞세워 높은 수익성까지 확보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LG전자는 가능한 한 빨리 빅5 안에 진입해 생존권을 확보한 후 다시 1위를 추구하는 단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LG가 8위로 부상했지만 점유율은 2.9%에 지나지 않습니다. 빅5권 메이저들과는 너무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이른 시간 안에 메우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김종은 LG전자 사장은 올해부터 본격화하는 유럽 GPRS 단말기 시장 공략을 빅메이저 진입을 위한 첫 단추로 보고 있다. CDMA 단말기에서는 서비스사업자인 LG텔레콤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신규 CDMA서비스 시장에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업체들은 아직 명확한 생존카드를 뽑지 못하고 있다. 브랜드 없는 사업을 하면서도 메이저군 진입을 목표한 브랜드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연산 1000만대에 진입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메이저군 진입에 필요한 발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홍성범 세원텔레콤 회장의 말이다. 세원과 팬택은 실제로 각각 맥슨과 큐리텔을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인수해 연산 1000만대를 목표로 규모의 경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김동연 텔슨전자 부회장은 M&A가 전가의 보도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생존을 담보해낼수 있는 수익성을 어떻게 확보해내느냐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도 수익성 확보가 전제돼야 합니다. 수익성이 없을 때는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보다 기술력과 수익성에 초점을 두고 착실히 브랜드를 키워 나가는 게 좋습니다.”
관계자들은 그러나 중소업계가 모두 두리뭉실한 비전을 추구하기보다 지금이라도 각자 확실한 생존카드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전략에 전력투구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메이저군 진입을 원하는 업체간에는 가능한 한 M&A를 감행해야 합니다. 기술개발과 생산 등에서 중복투자를 줄이고 바잉파워를 앞세워 비용절감을 해야 합니다. 특히 브랜드에는 규모의 경제가 필수적입니다.”
한 관계자는 중소업체들이 퀄컴 칩 공동구매를 시도했지만 퀄컴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브랜드 전략을 추구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큼니다. 그보다는 국내 중소기업의 강점인 설계기술을 활용, ODM과 같은 차별화된 방식으로 생존권을 추구하는 전략도 필요한 때입니다.”
한 중소업계 고위인사는 굳이 브랜드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아직 국내 중소기업들이 살아갈 여지는 많다며 이같이 실토한다. 이들 중소업체와는 입장이 다르지만 단말기 디자인하우스업계 중에서는 끝까지 제조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곳도 있다.
“통신사업은 스피드입니다. 제조라인을 갖추면 그만큼 속도가 느려집니다. 우리는 스피드를 무기로 라인 없는 디자인하우스로만 승부하겠습니다.” 벨웨이브 양기곤 사장의 전략이다.
또 한편에서는 생산기술부문에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세계적으로 바람이 불고 있는 EMS사업으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국내 실정상 아직 때가 아닙니다. 내부에 생산라인을 보유하는 게 훨씬 경제적입니다.”
삼성과 LG는 장기적으로 아웃소싱이 대세임을 인정하고 있으나 현단계에서 단말기를 아웃소싱하는 게 손익계산상 오히려 손해라고 판단하고 있다. 중소업계도 삼성과 LG가 아웃소싱을 하지 않는 이상 EMS는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모두가 회의적이다.
“브랜드냐, ODM이냐, EMS냐, 디자인하우스냐 등 다양한 생존카드가 있지만 이젠 확실한 선택을 할 때입니다. 브랜드를 추구하다 안되면 ODM이나 한다는 안일한 생각은 과다비용과 과열경쟁으로 자칫 공멸의 우려가 있습니다. 각자에게 적절한 차별화된 전략을 확실히 추구해야 공존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한 관계자는 국내 중소업체들이 중국 시장에서 유사한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벌써부터 출혈경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차별화를 강조했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