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게이머들 `랜파티` 축배 `우정의 칵테일`나눈다

 “낑낑”,“헥헥∼”,“철커덕”

 무슨 소리일까? 다름아닌 네트워크 게임을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리다. 힘겨운 아우성은 바로 컴퓨터를 옮기고 랜(LAN)을 연결하느라 부산을 떠는 데서 나온다. 게임 한번 하는데 그 정도로 소란스러워야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두 집 건너 PC방이 즐비하고 집집마다 ADSL이 시원하게 뚫려 있는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 초고속망이 우리나라처럼 발달하지 못한 외국에서는 네트워크 게임을 하기가 쉽지 않다. 게임의 생명인 스피드와 긴장감은 버벅대는 모뎀 때문에 맥빠지기 일쑤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게이머들이 각자의 집에서 컴퓨터를 들고 와 창고에 모여 임시 서버를 만들고 한바탕 게임마당을 벌이는데 그것이 바로 랜파티(Lan party)다.

 초고속 인터넷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랜파티’가 수입돼 게이머들 사이에 호응을 얻고 있어 화제다. 비스코(대표 이지영)에서 주최하는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랜파티’가 그것.

 비스코는 1인칭 액션 게임인 ‘울펜슈타인’의 유통사로, ‘울펜슈타인’ 마니아의 친목도모와 저변확대를 위해 랜파티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부터 3차례 열린 울펜슈타인의 랜파티에서는 매회 100명이 넘는 울펜슈타인 마니아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비스코측은 “4차 랜파티는 장충 체육관에서 해볼까 기획 중”이라며 “게이머들의 호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랜파티를 도입한 것은 지난해 WCG의 홍보대회로 열린 ‘무박 2일의 게이머 파티’며 현재 비스코 외에도 EA코리아도 ‘글로벌 오퍼레이션’ 등 자사 게임의 랜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 개최되는 랜파티는 외국의 경우처럼 컴퓨터를 옮기고 랜을 연결하는 수고는 필요없다. 그러나 경상도, 강원도에서 랜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는 게이머들을 보면 컴퓨터를 들고 창고에 모이는 외국 게이머 못지않은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부산에서 올라왔던 한 회사원은 “각 지역에서 랜파티를 체험할 수 있도록 랜파티 전국 투어를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이디가 yourself인 게이머는 “세번째 랜파티에 참석했지만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게임을 같이할 수 있다는 점이 여전히 신기하고 흥분된다”는 글을 게시판에 남겼다.

 초고속 통신망이 잘 발달된 우리나라에서도 랜파티가 호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랜파티 참가자들은 게임도 게임이지만 평소 인터넷으로만 만나던 게이머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몸도 부대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꼽는다.

 랜파티는 저마다 숨은 실력을 겨루는 대회이면서도 경쟁보다는 친목을 지향하는 커뮤니티 성격이 짙다. 그런 의미에서 랜파티는 디지털 문화와 아날로그 문화의 오묘한 조합이다. 인터넷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지만 아이디와 채팅만으로는 부족했던 정을 직접 만나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를 중심으로 게임 리그전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우리나라에서는 게임이 어느새인가 ‘재미’보다는 ‘경쟁’의 도구로 인식되는 경향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몇몇 온라인 게임의 경우는 사행성을 조장해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랜파티’가 건전한 게임 문화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지 주목하는 이유도 친목을 지향하는 랜파티의 성격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랜파티는 업체 주도 아래 이뤄져 랜파티 본래의 자율적인 성격이 변질될 우려가 얼마든지 있다. 게이머와 업체 모두의 자율적인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빌 게이츠는 ‘손끝으로 여는 세상’을 노래했지만 손가락 하나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발품을 팔아 친구와 동료를 만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초고속망 세계 1위인 우리나라 랜파티에서 보듯 말이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