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세일즈외교 전쟁중이다. 클린턴과 부시로 이어지는 미국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할 때에는 수십명의 기업계 인사들이 수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몇일전 핀란드 대통령 내한 때에도 노키아 회장이 동행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올초 유럽 순방때 국내 재계인사들을 대동했었다. 세계 각국이 대통령이 CEO가 된 주식회사로 둔갑하고 있다. 통신강국을 외치는 한국이 민관이 혼연일체가 된 한국주식회사로 똘똘 뭉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로벌스탠더드 추세가 다른 어느 곳보다도 강한 이동통신분야에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이다.
김 대통령이 외국 순방때 통신분야를 각별히 챙기고 있지만 과연 한국이 주식회사 같은 전열을 갖추고 있는지는 미심쩍다.
지난해 정부부처간에는 소위 ‘IT목장의 결투’가 벌어졌다. IT산업의 발달로 디지털컨버전 추세가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영역이 허물어지자 부처간에 밥그릇 싸움이 횡횡해졌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이 직접 교통정리를 지시했지만 결과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지난해 11월 이동전화단말기업체들은 이동전화단말기산업 육성과 해외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산자부 산하 전자산업진흥회 내 휴대폰산업협의회(회장 이기태)를 결성했다. 이기태 회장은 취임사에서 “국가의 정책·국익 등과 조화를 이루면서 이동전화단말기 산업의 대외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배경은 정통부의 홀대 때문이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통부 정책이 서비스사업 정책에만 치우쳐 제조업체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게 단말기업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협의회는 별다른 활동이 없다. 이동전화단말기산업을 놓고 산자부와 정통부가 서로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불분명한 외교와 통상업무의 효율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 정부가 정부 구조조정을 하면서 의욕적으로 외교부내에 외교와 통상을 합친 통상교섭본부를 신설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아직까지도 통상전문가는 산업자원부에 그대로 남아있고 통상교섭본부 내에는 통상전문가가 별로 없는 실정이다. 중국의 마늘파동으로 이동전화단말기 수출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서비스사업자들의 단말기산업 진출은 양 진영간 연대에 균열조짐을 보이고 있다. SK텔레콤에 이어 KTF도 단말기사업 계열사를 출범시켰지만 단말기업체들은 이들을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KTF가 중국에 단말기생산 합작사를 설립하겠다고 나서면서 단말기업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통신서비스업체가 제조업체를 겸업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이 문제로 서비스업체와 단말기업체간 해외시장 진출 공조에 균열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서비스와 단말기는 CDMA 확산의 두 축으로 두 진영간 공조는 국익과도 직결된다.
단말기업계 내에서도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저가공세로 해외시장에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불만이다. 지영만 삼성전자 상무는 “국내업체들이 저가를 앞세워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바람에 고가브랜드 정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해외시장 개척도 좋지만 ‘제살깎기’식 경쟁만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통부의 단말기 보조금 규제 강화정책에는 모두가 불만이다. 일관성이 없다는 점과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점 때문이다. 뚜렷한 기준 없이 여론의 향방에 따라 조였다 풀었다 하는 단말기 보조금 규제정책으로 서비스사업자나 단말기업체나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혼란을 겪고 있다. 신기섭 LG전자 부사장은 “당국의 정책혼선 등으로 제조업체들이 종종 어려움을 겪었다”며 “국내 업체들이 세계적인 업체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보조금 금지조치의 목적인 시장왜곡 방지 정책과 통신강국 부상을 위한 선도투자를 통한 통신인프라 확대 정책간에는 무엇이 우선순위인가 하는 의문도 업계에서는 제기하고 있다. 무엇이 더 국익인가 하는 점에서 혼란스럽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세일즈외교도 중요하지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정부·통신사업자·제조업체 등 민관이 하나의 기업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내부 전열을 가다듬는 게 CDMA의 성공신화를 이어갈 수 있는 필요조건이라고 다시한번 강조한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