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연구개발(R&D)’을 위한 전략적 제휴가 ‘인수합병(M&A)’을 대체하는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내로라하는 유명 반도체 업체들까지 차세대 공정기술의 신속한 확보를 위해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고 있다. 이는 0.09미크론과 같은 차세대 반도체 공정기술이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고 있는 데다 한 업체가 단독으로 R&D를 수행하면 반도체 연구개발 장비들간 상호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주요 요인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최근 반도체분야에서 일어나는 전략적 제휴는 메모리, 비메모리, 장비 등 다양한 분야의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일례로 이달 초 히타치, 미쓰비시전기, 세이코엡슨 등 3개사가 새로 가세한 차세대 리소그래피 기술 개발 컨소시엄인 ‘리플’에는 디바이스 업체, 마스크 업체, 레지스트 및 재료 업체, 장비 업체, 반도체 제조 업체 등의 분야 업체들이 무려 19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잇달아 발표되는 반도체분야 R&D 제휴는 대부분 다양한 업체 장비들간 상호 호환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지난주 이루어진 모토로라, ST마이크로, 필립스 등 3사의 제휴도 프랑스 크로렐스의 300㎜ 웨이퍼 설비를 기반으로 공정표준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에 앞서 지난달 NEC, 도시바, 후지쯔,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전기 등 일본 5개 전자업체들이 합의한 공동출자 회사도 차세대 반도체 개발공정을 일원화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도체 업체들이 R&D 제휴에 매달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첨단 공정개발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투자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IBM과 도시바, 소니의 제휴도 반도체 업체들간 R&D 제휴가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지 반증해주고 있다. 3사는 이번 제휴를 통해 그 동안 각자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첨단기술을 상호 개방해야 된다. 이에 따라 IBM은 반도체 전원과 관련한 배선 및 적층기술 등을 도시바에 제공하는 대신 도시바측으로부터 반도체회로 생산에 결정적인 평판인쇄기술을 공급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미국 인비저니어링그룹의 리처드 도허티 연구원은 “IBM은 소니와 도시바에 자사의 핵심기술을 개방할 계획”이라며 “제휴 업체들에 대해 핵심기술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는 것은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반도체업체들도 해외업체와 제휴해 차세대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후지쯔·히타치·소니·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10여개사와 70∼10㎚급의 미세회론선폭 공정에 적용할 요소기술을 공동개발하는 ‘아스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5개년 계획으로 총 700억엔을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삼성전자는 차세대 공정기술 확보는 물론, 300㎜ 양산화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또 일본전자정보기술산업협회(JEITA)를 비롯해 인텔, NEC, 니콘, 도쿄일렉트론 등 20여개의 세계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업체들과 ‘미라이’ 프로젝트도 추진중이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현재 추진중인 0.1㎛ 이하의 반도체 공정기술 개발에 관해 해외 협조체계를 만들고 해외 산학연 연계고리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 2000년부터 인텔과 6개 주요 D램 업체들이 차세대 D램 규격 통일을 위해 공동으로 구성한 ‘ADT(Advanced Dram Technology) 그룹’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 반도체를 생산하는 원판에 해당하는 웨이퍼의 크기가 200㎜에서 300㎜로 커지고 또 반도체 회로를 기록하는 공정기술도 0.13㎛에서 0.09㎛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 업체들간 공동 연구개발을 위한 R&D 제휴는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