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서울시 서초구 전력선통신서비스 시범마을에서는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1Mbps급 성능의 통신모뎀을 이용한 홈네트워크가 선보여 본격적인 전력선통신시대의 개막을 예고했다.
장관까지 참석해 내외에 자랑스레 소개된 이 시범마을은 고주파 사용의 예외를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정부가 지원한 연구성과물이 시연되고 있는 대표적 ‘불법(?) 서비스 시범마을’의 전형이란 꼬리표를 떼기 힘들다.
현행 전파법 시행령에는 PLC 구축과 관련해 저주파(9∼450㎑), 단파(450㎑∼1.5㎒), 고주파(1.5∼30㎒)대역 가운데 9㎑ 미만의 저주파 대역만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파는 라디오방송용으로 할당돼 있고 고주파대역은 아마추어 무선사 통신용 주파수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통부는 법개정을 통해 고주파대역의 일부를 홈네트워크용으로 활용토록 하는 작업을 여전히 최대 과제로 남겨놓고 있다.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마추어 무선사용과의 통신대역 및 혼선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합동 공청회 등을 거쳐 아마추어 무선사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지만 아직 구체적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반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젤라인 등이 중속모뎀을 사용하고 있고 ㎒급 전력선통신을 이용한 초고속모뎀이 개발되는 등 향후 본격 전개될 홈네트워크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주파수와 상관없는 법규상 진입장벽의 또다른 예도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경기도 용인 수지면 아파트 100가구에 미국 애슬론사의 전력선통신용 칩을 조달받아 이를 냉장고에 적용하고 각 가구에 설치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정통부로부터 가구별로 설치된 냉장고에 대해 개별적으로 설치허가를 받은 후 정통부의 실사까지 받아야 했다. 현행 전파관리법상 주파수 관련제품의 설치계통마다 제품 설치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법적인 것 외에 홈네트워크 확산의 발목을 잡는 산업계의 문제로는 표준화와 보안을 거론할 수 있다. 홈네크워크용 PLC표준 마련은 향후 가전업체나 모뎀 및 게이트웨이 개발업체들의 기술개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 상황을 보면 전파연구소가 저주파용 PLC 모뎀 제품에 대한 시험을 거치고 있지만 여전히 PLC 모뎀에 대한 시험방법·인증절차 등의 마련은 지지부진하다. 모뎀을 통해 이뤄지는 혼신 및 보안문제 등은 사실상 업계의 손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 혼신방지를 위해 PLC포럼 등이 나서서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보안문제는 모뎀제조사가 설치하는 필터에 의존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홈네트워크 실현을 위한 최적의 제반 인프라를 구축해 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제도상의 허점과 이에 따르는 산업계의 애로는 여전히 남아있다. 기존의 법상 허용된 저속모뎀을 이용하는 문제에서조차 법제도적 장벽과 보안 및 검사인증 기준의 미비 등으로 홈네트워크의 확산절차는 여전히 까다롭기만 하다는 게 산업계의 시각이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