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 한국에 핵심 연구센터를 설치한 것은 국내 관련산업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입니다. 엔지니어로선 더할 나위 없는 자랑이지요.”
LG오티스의 서종호 연구소장(41)은 요즘 엔지니어로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맞고 있다. 지난달 미국 오티스 본사로부터 경남 창원에 소재한 중앙연구소를 글로벌 엔지니어링 센터로 승격시킨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오티스의 차세대 승강기 개발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위치에 올라선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 오티스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센터는 미국·일본을 포함해 전세계에 네 군데밖에 없다. 특히 LG오티스는 LG에서 미국 오티스로 인수된 지 불과 2년 4개월 만에 핵심 연구소로 지정받았는데 여기에는 서종호 연구소장의 공이 크다.
“사람들은 흔히 한국의 승강기기술이 외국보다 못하다고 여겨왔지만 이젠 아니죠. 앞으론 국내 연구소에서 개발된 승강기부품이 세계 200여 국가에서 사용될 겁니다.”
그는 지난 78년 금성사의 엘리베이터 설계실에 입사한 이래 전량수입에 의존하던 승강기부품을 차례로 국산화하면서 숨은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80년대 최초의 인터버 승강기와 고층용 초고속 승강기, 지난 몇년간 내수시장을 석권한 시그마 엘리베이터까지 모두 서종호 연구소장의 작품이다. 국내제일의 승강기장인으로 인정받던 그에게도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 99년 다국적기업인 오티스에 회사가 인수되자 한솥밥을 먹던 많은 연구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난 것.
“눈앞이 깜깜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승강기업체로서 쌓아온 기술력과 자부심마저 포기할 수 없다며 연구원들을 다독거렸죠.” 결국 서 소장은 LG오티스 창원연구소를 최단시일내에 다국적기업의 핵심 연구소로 격상시켜 세계일류의 장인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지난주 창원공장에서 만든 에스컬레이터 부품이 정밀기계로 유명한 독일에 수출됐어요. 이제 한국 승강기산업도 외국기술에 대한 컴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시점에 도달한 겁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