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PC 시장이 확 달라졌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방문하는 손님을 대상으로 하루 한두대씩 조립해 판매하는 영세업자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대신 제법 규모를 갖춘 전문 조립PC업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직 인지도는 낮지만 업체마다 브랜드도 있다.
특히 그동안 횡횡했던 무자료거래와 밀어내기식 덤핑, 외상거래가 상당부분 없어지고 현금거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현금거래를 바탕으로 한 투명한 시장이 형성되면서 연례 행사처럼 치르던 부도홍역도 거의 사라졌다.
“IMF 이후부터 일기 시작한 풍경입니다. 이제 전자상가에서 영세 조립PC업체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한때 조립PC업체들의 터전이었던 나진상가에 입점해 있는 관계자의 말이다.
관계자들은 암거래와 부도의 온상처럼 여겨졌던 조립PC시장을 이처럼 단시간 내에 투명하게 변혁시킨 주인공은 IMF와 IMF 위기를 극복한 주요 조립PC업체들이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국내 4대 PC메이저에 진입한 현주컴퓨터·주연테크·디지털뉴텍 등이 바로 이들이다. 이중에서도 현주가 가장 돋보인다.
“IMF를 겪으면서 무자료와 외상거래로 덩치키우기에 연연하던 업체들이 모두 부도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현금거래와 안전한 경영에 치중해온 업체들은 살아남아 무주공산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삼보컴퓨터 관계자는 현주가 메이저군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위험한 도박을 하던 선발업체들이 일거에 사라진 게 큰 요인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현금으로 부품을 조달하고 현금을 받고 PC를 유통시키는 경영방침으로 어려움도 많이 겪었습니다. 현금을 요구하다보니 판매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매출을 확대하는 데에도 속도가 더뎠습니다.” 현주컴퓨터 측의 설명이다.
현금거래를 원칙으로 하는 현주컴퓨터나 주연·디지털뉴텍이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조립PC시장에서 튼실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가격경쟁력이다.
“현금으로 부품을 구매하면 구매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PC완제품도 회전만 빨리시키면 재고부담이 없어 그만큼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외상거래방식은 이자까지 얹어줘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요.”
주요 조립PC업체들이 PC가격을 떨어뜨리면서 조립PC시장에도 규모의 경제 논리가 적용되기 시작, 영세 조립업체들이 버티기가 어려워지면서 이들도 하나둘씩 도태됐다.
이제는 조립PC사업도 월 200∼300대 이상을 만들지 못하면 손해보고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상가 입점업체들은 직접 조립하기보다는 규모를 갖춘 업체들이 조립한 PC를 받아다 소매하는 추세다. “무엇보다도 좋아진 것은 조립PC업체들의 부도여파로 홍역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이제 용산에서 예전처럼 대형 부도는 거의 없습니다.”
조립PC업체들에 외상으로 부품을 공급해놓고 조마조마해 하던 수많은 부품상들은 현금으로 부품을 공급하면서 부도 공포에서 벗어났다.
“조립PC업체들로부터 외상으로 대량의 PC를 공급받아 덤핑처리한 후 사라지는 부도덕한 업체들도 이제는 존립근거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덤핑도 많이 사라졌지요.” 삼성전자 관계자의 전언이다.
암거래와 부도의 온상이었던 조립PC 시장이 투명해지면서 용산상가의 모습마저 바뀌고 있다는 게 상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