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 공과대학의 클라우스 엔슬린 교수는 취재진을 맞아 나노기술이 향후 정보통신산업에 미칠 파장에 대해 속사포처럼 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양자물리학에 기초한 미래전망이었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몇 가지 의미는 분명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기존 컴퓨터기술을 석기시대의 유물로 만들어 버릴 퀀텀(양자)컴퓨터가 향후 20년 안에 개발될 것이란 점, 그리고 양자현상을 이용한 통신(양자통신기술)은 이미 실용화에 근접했다는 것. 원자단위의 초미세공간을 설명하는데 쓰이던 양자물리학이 나노테크놀로지를 통해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전물리학이 아닌 양자물리학에 기초를 둔 양자컴퓨팅기술이 언제쯤 실용화되나.
▲예측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20년 안에 실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방법은 초전도체·이온점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전자의 회전(스핀)방향을 양자점(퀀텀돗) 안에 가둬서 정보신호로 이용하는 방법이 유망하다. 향후 정보통신기술이 무어의 법칙을 유지하려면 양자컴퓨터 외에는 솔루션이 없다. 산업적인 요구가 높기 때문에 언젠가 실용화될 것이 분명하다.
―양자컴퓨터가 실제로 나올 경우 사회적 파장을 예측한다면.
▲예측 불허다. 양자컴퓨터의 연산능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기존 컴퓨터로 수백년씩 걸릴 계산도 단 몇 분 안에 처리할 수 있다. 컴퓨터의 연산속도가 갑자기 수천, 수만배나 빨라지면 모든 암호체계가 파괴되기 때문에 정보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반면 의약·생명공학분야는 획기적인 발전이 예상된다.
―양자현상을 이용한 통신(양자통신)기술의 실용화 전망은.
▲물질의 양자특성을 이용하면 절대 도청이 불가능한 통신기술이 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빛의 입자 하나에 정보를 실어서 암호화된 형태로 쏘아보낼 경우 중간에서 신호를 도청해도 해독이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군사용 통신기술로 활용가치가 매우 높은데 최근 미 국방부는 아프간 전쟁을 계기로 양자통신기술을 지닌 영국의 몇 개 회사에 막대한 연구비지원을 시작했다. 전장에 파견된 병사와 본국 사령부 사이에 완벽하게 안전한 통신채널이 보장된다면 전쟁양상은 획기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또 양자통신망을 구축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는 현격한 국력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나노연구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지난 20세기는 고전물리학에 기초한 문명의 이기, 즉 전화·컴퓨터 등이 등장해서 세상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21세기는 양자물리학에 뿌리를 둔 새로운 기술문명이 꽃피는 시기가 될 것이다. 특히 나노기술은 양자물리현상을 실생활에 응용하는 기초적인 도구로서 아무리 강조해도 그 중요성은 지나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에 보다 큰 자부심을 갖길 바란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