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온라인 게임업체들은 요즘 이런 비판을 많이 듣는다. 최근 온라인 게임의 역기능이 이슈화되자 뒤늦게 대책을 발표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온라인게임업체들 사이에는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다. 오로지 돈이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더러는 사회적 역기능을 암묵적으로 조장하면서까지 돈벌기에 혈안이 돼 있다.
최근 사회적 역기능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리니지’가 대표적이다. ‘리니지’에서 파생되는 아이템 현금거래 등의 문제는 이미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대책도 여러번 발표됐다. 하지만 번번히 엔씨소프트의 의지력 부족으로 유야무야되는 수순을 밟아 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대책들이 한결같이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강제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엔씨소프트가 최근 건전한 온라인게임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까지 마련하며 부산을 떠는 것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난 11일 열린 캠페인 발족식에 연예인까지 동원했으나 썰렁하기 그지없었던 것은 이를 잘 반영한다. 궁지에 몰리자 ‘생색내기용’으로 급조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렇다고 다른 업체들이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이템 현금거래를 부추기는 공성전시스템 등 ‘리니지’에서 문제가 된 요소들을 여과없이 베끼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물론 ‘리니지’만큼 역기능이 스포라이트를 받지는 않았지만 파생되는 문제점은 ‘리니지’와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가 심의라는 초특급 카드를 꺼내든 것도 따지고 보면 업계의 이같은 도덕불감증 때문에 비롯됐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한 셈이다. 비단 사회적 역기능뿐만 아니다. 업체들이 돈만 쫓다보니 업계 공동의 발전에 인색한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24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순이익도 116억원이나 올렸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이 돈을 국내 업계에 재투자하는 데 인색했다. 반면 미국의 게임 개발자 리처드 개리엇 형제를 영입하는 데 400억여원이라는 거금을 들였다. 또 올해부터 게임 퍼블리싱 사업을 개시하면서 ‘에버퀘스트’ ‘시티오브히어로’ 등 외산 게임에만 눈을 돌렸다. 국내에서 돈을 벌고 해외에서 돈을 쓴 셈이다.
최근 출혈경쟁으로 얼룩진 수출 역시 업체들의 이기주의가 빚어낸 산물이다. 제살깎기 수출경쟁이 결국 업체들 자신의 피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동 대응이나 자구책 마련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사회적 역기능 다음 차례로 제살깎기 수출경쟁이 업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런 업계를 도와줄 우군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온라인게임은 뭐니뭐니해도 게이머들이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하지만 업계가 게이머들과 함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국산 온라인게임은 버그와 해킹의 사각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불완전한 게임을 양산하고 있다. 국산 온라인게임의 경우 60%만 만들어지면 공개 베타서비스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정석’일 정도다.
물론 버그나 해킹에 대한 유저들의 불만이 터져나와도 모른척하기 일쑤다. 해킹의 경우 게임 프로그램상 문제보다는 질 나쁜 유저들의 문제로 돌리는 일도 다반사다.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유저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업체도 비일비재하다.
전문가들은 이는 산업이 갑자기 급성장한 반면 이에 따른 기업의 윤리나 사회적 책임이 뒤따르지 않아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국내 온라인게임산업이 태동기를 지나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산업발전 못지않게 윤리나 책임에 대한 인식이 강조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비판을 이제 건성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맞춰 업계가 함께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