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지상파 게임 전문 프로그램이 펼치는 게임 세상 

 ‘경쟁상대일까? 동지일까?’

 지상파 유일의 게임 버라이어티쇼였던 SBS의 ‘게임쇼! 즐거운 세상(이하 게임쇼)’에 MBC의 ‘줌인 게임천국(이하 줌인)’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게임쇼’는 지난해 2월 첫방송 후 1년이 넘게 지속돼온 IT분야의 장수(?) 프로그램. 이제 시청자의 품으로 안긴 ‘줌인’은 올해 4월 MBC 봄철 프로 개편을 통해 신고식을 치른 새내기 프로그램이다.

 분명 같은 장르의 프로그램인데 이들이 서로 경쟁상대일 것이라고만 확언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게임이라는 장르가 기존의 지상파 방송에서는 거의 다뤄본 적이 없는 미지의 땅이기 때문이다.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게임쇼’와 ‘줌인’은 어쩌면 한 배를 탄 동반자인 셈이다.

 이들 프로그램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역시 프로그램의 성격이다. 게임의 대중화에 기반을 두고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지만 역시 게임은 노래나 토크쇼, 코미디 프로에 비해 마니아성이 강한 장르라 지상파에서 소화해내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조금만 깊게 파고들면 일반 시청자를 잃어버리고, 너무 오락성과 대중성을 강조하다 보면 ‘한가닥’하는 게임 마니아들의 충정어린 비판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어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절묘한 줄타기는 양 프로그램 제작자 모두의 고민이다. 게임 마니아가 없거나 일반 시청자가 없는 ‘도너츠형’ 프로그램이 아닌 모두를 보듬을 수 있는 ‘호떡형’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른바 ‘호떡론’을 두고 제작진이 밤새 열띤 토론과 고민을 쏟아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또 ‘게임쇼’와 ‘줌인’ 모두 시청 사각 시간대인 심야에 편성돼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설치는 ‘잠과의 전쟁’에서 이기도록 재미와 몰입도를 한층 높여야 한다.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에 가보면 시청 시간대를 옮겨달라는 얘기가 적지 않게 눈에 띈다.

 프로그램을 둘러싼 환경은 비슷하더라도 ‘게임쇼’와 ‘줌인’은 엄연히 다른 프로그램이다. 이 두 프로그램이 펼치는 게임 세상은 어떤 것일까.

 ◇기획의도 VS 기획의도=게임 버라이어티쇼라는 장르를 처음 지상파에 도입한 ‘게임쇼’의 기획의도는 사뭇 진지하다. 케이블TV·인터넷 등의 게임 프로그램과의 차별화된 게임 프로그램을 지상파의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 게임의 대중화에 앞장서겠다는 게 ‘게임쇼’ 제일의 목표다. 또 게임을 단순히 놀이가 아닌 복잡다단한 문화로 규정하고 영화 프로그램과 같은 날카로운 문화비평까지 곁들이겠다는 것이 두번째 기획의도다.

 반면 ‘줌인’의 경우 게임을 철저하게 놀이 자체로 보고 한층 진화된 오락성과 대중성이 겸비된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늦은 밤시간에 머리 아프게 프로그램을 볼 필요없이 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웃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

 ◇코너 VS 코너=‘게임쇼’는 ‘게임파일’ ‘게임의 법칙’ ‘게임속 베스트5’ 등의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프로게이머이자 게임캐스터로 활약하고 있는 길수현씨가 진행하는 ‘게임파일’은 가장 긴 코너이자 게임 마니아를 위한 코너다. 게임에 대한 일반소개뿐만 아니라 심층적 분석까지 더해진다. 기능적 분석·스토리 분석·장르분석·캐릭터분석에서부터 숨겨진 비화와 흥행 이유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분석을 통해 정체를 감출 수 있는 게임은 없다. 게임에 대한 철학적, 예술적 분석을 통해 ‘게임쇼’의 1년 노하우를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게임비평 편집장 정태룡 기자가 진행하는 ‘게임의 법칙’에서는 게임의 일정한 법칙을 찾아내는 놀라움을 맛볼 수 있다. 이 코너에는 20∼30여개가 넘는 게임이 현란하게 난무하는 비주얼의 화려함이 일단 장관을 이루는데다 수십여개의 게임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법칙을 찾아내는 통쾌함은 게임 마니아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신선한 재미와 흥분을 가져다준다.

 ‘게임속 베스트5’에서는 게임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의 베스트5를 찾는다. ‘최고의 악당’ ‘최고의 필살기’ ‘게임속 별난 가족’ ‘이색 게임’ 등이 다루어졌다.

 ‘줌인’의 경우 편성시간이 35분(게임쇼 60분)으로 짧기 때문에 분석보다는 순간의 즐거움을 프로그램의 절대 미학으로 삼는다. ‘진표의 게임고고’에서는 게임 관련 이슈를 현장에서 만난 게이머, 유통업자를 통해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도전! 15분을 버텨라’는 시청자가 참여하는 독특한 대전으로 프로게이머와 일반인이 스타크래프트 대전을 펼친다.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15분을 버티기 위해 참가자의 몸부림이 계속되는 가운데 시청자는 재미와 현장감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이 코너는 연예인과의 대전 등 다양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MC VS MC=‘게임쇼’의 정태룡 기자는 내로라하는 비디오 게임분야의 비평가다. 담당 PD에게 ‘게임쇼’ 최대의 무기가 뭐냐고 물었더니 정태룡 기자라고 답할 만큼 게이머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다. 나이도 가족사항도 모두 불문에 부친 채 자신을 어려운 시대 ‘불의 편집자’라고 소개하는 그의 딴지 기질도 시청자를 매료한다.

 ‘줌인’의 김진표씨는 단순한 프로그램의 얼굴 마담이 아니다. 그 역시 비디오 게임 마니아로 유명하다. 게임프로 MC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씨는 자신이 맡은 게임의 경우 절대 그냥 나오는 법이 없이 밤이 새도록 게임을 해 본다. 그의 독특한 말솜씨와 버무려져 나오는 생동감 있는 진행을 통해 시청자는 게임 세계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다.

 지상파 방송에서 그것도 둘씩이나 정통 게임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게임이 우리 사회에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KBS도 게임 관련 프로그램 신설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매우 고무적이다. ‘게임쇼’의 경우 같은 시간대인 ‘이소라의 프로포즈(현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시청률 4.5%에 다소 못미치는 평균 3.5%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으며 이제 방송 3회분을 마친 ‘줌인’의 경우도 시청률이 3% 가까이 나오고 있다.

 ‘게임쇼’의 김영수 PD는 “지상파 게임 방송이 게임에만 몰두하는 게이머들을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장으로 이끌어내 올바른 게임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우수 콘텐츠가 될 게임산업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