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단절’.
인쇄회로기판(PCB)산업은 전·후방 산업이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제조 능력을 설비가 좌우하고 전공정은 설비에 의존하기 때문에 장비·소재·약품 등 각 산업의 국산화와 유기적인 협조체계는 PCB산업 경쟁력과 바로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트업체·PCB제조업체·장비업체·소재업체·약품업체 등 모든 구성원들은 30년간 정보 교환이 단절된 채 PCB산업에 종사해왔다. 특히 PCB업계는 모두가 동반 상승해야 세계시장에서 강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가운데 기술개발과 양산만을 되풀이해왔다. 한 마디로 ‘따로국밥식’으로 기업경영을 해온 것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은 PCB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치열한 견제속에서도 PCB업계는 눈과 귀를 닫아버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시장규모·기술수준 등 제대로 된 기초 자료조차 국내에서 구해보기 힘들다는 것은 업계의 폐쇄성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업계는 성숙기를 앞둔 PCB산업이 말그대로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폐쇄적인 마인드를 거둬버리고 열린 산업을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컨대 지엽적인 경쟁에 지나치게 집착, 외부에 생산라인을 공개하지 않는 기존의 불문율은 과감히 내던져야 한다는 것.
중국·대만 등 경쟁국처럼 생산라인을 경쟁 업체에 공개해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품질 제고는 물론 생산성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특히 세트·PCB·소재·장비·약품 등의 품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각 업체간의 유기적인 협력이 절실하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외산에 대한 선호도도 개선돼야 할 과제다.
‘외산 장비와 약품이 손에 익다’는 점 때문에 국산 제품의 품질이 우수함에도 사용을 꺼리고 있는 게 업계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필요 이상의 원가 상승을 스스로 부채질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장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국심에 호소할 생각이 없다. 당당히 기술과 품질에서 승부하고 싶다. 그런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하고 있다. 뿌리박힌 외산 선호도가 장비·소재 등 PCB 주변 산업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동반자 정신마저 희박하다. ‘갑과 을’의 관계가 너무 강해 각 구성원의 존재마저 망각하고 있다는 것. 소재업체들은 한결같이 수요업체들이 외산 제품과의 가격 경쟁만을 부추겨 공급 가격을 낮추려만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수요업체들은 국내 소재업체들이 존재함으로써 외산업체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경쟁의 패러다임은 완제품에서 부품·소재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PCB산업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먼저 전후방산업이 균등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극복하는 노력이 급선무라는 뜻있는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