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금리인상과 전윤철 신임 경제부총리의 경기조절 가능성 발언이 이어지면서 정책당국의 경기조절책 시행은 이제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전기·전자 등 정보기술(IT)업종을 중심으로 당국의 이같은 조절론에 대한 ‘신중론’이 일고 있다. 이제 막 숨통이 트인 내수는 물론, 아직 확실한 ‘성장 신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수출에 있어서도 정부의 이같은 입장변화는 자칫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한국경제연구원은 17일 발표한 ‘경제전망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최근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특소세 인하, 건설관련 규제강화 회피 등 일회성 요인에 기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당국의 선제적 금리인상에 따른 거시경제적 효과는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연구원측은 전망했다.
◇경기조절론 왜 나오나=한국은행 등 경제정책 당국이 우려하는 점은 크게 두가지, 물가상승과 유동성 악화다.
박승 한은 총재는 “올해 전체로 보면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지만, 현 상황에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내년 이후 4% 이상의 물가상승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이 국회 재경위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도 현재 총유동성(M3) 증가율이 연간 감시범위인 8∼12%를 넘어 과잉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M3 증가율은 지난 1월 11.6%에 이어 지난달에는 12% 초반 수준으로 높아졌다. 특히 통화(M1)는 20%대의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전윤철 신임 경제부총리도 지난 15일 취임후 있은 첫 기자간담회에서 “(경기조절은) 1분기 결과를 보고 미세조정이 필요하다면 손을 댈 것”이라고 말해 재경부 차원의 경기조절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있음을 나타냈다.
◇IT내수에 미치는 파장=롯데백화점은 이달초 실시한 봄 정기세일 기간중 전기·전자제품 부문에서만 작년 세일기간보다 62% 높은 매출신장세를 기록했다. 현대백화점도 가전부문 매출이 51%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세일기간 주요 백화점의 평균 매출증가율이 30%를 넘지 못하고 있어 IT제품의 판매증가세가 내수를 선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금리인상 등 정부의 인위적 경기조절은 시기상 오는 6월말로 끝나는 특별소비세 인하조치와 맞물리게 된다. 이에 따라 에어컨, 프로젝션TV 등 최근 가전제품의 매출을 주도하고 있는 주요 품목의 판매급감이 예상된다. 이들 주요 디지털 신제품을 중심으로 한 국내의 IT 내수시장은 본격적인 제품수출에 앞서 ‘테스트베드(test bed)’ 역할을 하고 있어 내수시장의 침체는 곧 수출부진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윤동훈 박사는 “정부의 금리인상이나 통화환수정책은 회복 초기단계에 있는 IT경기에 찬물을 끼얹게 된다”며 “아직까지 국내 IT산업의 부흥은 가전제품 등 내구재 소비 주도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전자산업의 회복속도와 시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통화정책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IT수출에 끼치는 영향=현재 한국은행 등 경제당국이 경기조절책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 것은 국내 내수시장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 수출은 13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일본 등 주요 수출대상국의 경기는 여전히 뚜렷한 호전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자산업진흥회에 따르면 주요 IT수출품 중 하나인 휴대폰은 전년 수출증가세에 못미치고 있고 PC 역시 약보합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반도체도 여전히 30%대의 수출감소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리인상 등 정부의 경기조절책 시행은 환율불안과 더불어 각종 수출지원기금의 금융비용 상승으로 작용한다. 이는 곧 수출시장에 대한 투자의욕 상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무역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달초 한국무역협회가 297개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경기조절론에 대한 수출업계 의견’을 설문조사한 결과, 정책당국 경기조절에 따라 금리가 현재보다 1.0%포인트만 상승해도 수출채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반응이 전체 응답업체의 69.2%나 차지했다. 이들 업체는 수출 조기회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금리, 환율, 물가 등 거시경제변수의 안정을 꼽았다.
현오석 무역협회 무역연구소장은 “현재 정책당국이 구상중인 경기조절책은 다소 성급한 면이 있다”며 “당국이 구상중인 경기조절책의 시행은 물가안정 측면에서는 기업의 각종 부대비용 절감이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금융비용의 증가는 시장에 대한 투자의욕 자체를 상실시킬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