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 이동전화단말기로 집안의 TV·세탁기·히터 등을 가동한다. 퇴근하다가 냉장고의 내용물이 부족하면 자동으로 주문할지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이동전화를 통해 뜬다. ‘예스’ 버튼을 누르면 사전입력 프로그램에 의해 단골 인터넷쇼핑몰에 주문하게 된다. 휴일날 야외에 나가 캠코더에 담아온 동영상을 집으로 가져와 블루투스를 이용하거나 메모리스틱으로 간단히 DVD플레이어에 저장해 재생할 수 있다.
휴대폰이나 어떤 단말기든 디지털가전은 이런 방식으로 조만간 우리생활 깊숙이 들어오게 되며 부분적으로 이미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다.
최근 가전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적으로 디지털 가전개발과 시장확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마치 디지털화를 이뤄내지 못하면 산업에서 살아날 수 없다는 듯이.
하지만 실제도 그렇다.
그동안 세계 5위의 전자대국이라고 하던 우리나라가 어느새 낮춰 보던 중국에 뒤져 세계 7위의 전자수출국이란 꼬리표를 달게 됐다. 중국의 급신장세는 거칠 것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지난 54년 라디오 조립에서 시작해 국가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커진 전자·IT산업을 열었던 우리나라 가전업계의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물량으로 보면 세계시장의 30∼40%까지 점유하는 품목까지 갖고 있는 중국 가전업체 성장세에 압도당할 것 같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를 바라보던 우리 가전업계는 지난해 하반기 이래 디지털가전이란 새로운 화두를 찾아 이를 풀어가면서 자연스레 세계시장에서 변화의 바람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몇몇 나라만이 갖고 있는 기술, 그 중에서도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라는 우리의 모니터 기술을 채택해 성장의 바람을 타고 있는 디지털TV, 그리고 세계최초의 인터넷기능을 실현시킨 냉장고, 역시 인터넷서핑 기능을 갖춘 전자레인지와 세탁기가 개발·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기술과 접목돼 통신까지 실현시킨 제품이 세계 가전시장을 단연 주도해 나가고 있다.
세계적 가전명품을 내놓고 있는 GE·월풀·소니·도시바·필립스 등도 이같은 흐름을 타고 디지털화 홈네트워크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제품군을 구상하거나 내놓고 있다.
특히 최근 인터넷제품군을 내놓으면서 가전의 디지털화에 눈뜬 일본업계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경기침체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일본의 도시바·샤프·히타치 등 가전업체도 블루투스 기능을 갖춘 냉장고·세탁기·전자오븐 및 인터넷 기능을 갖춘 전자오븐·에어컨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는 디지털화와 함께 가전에서 여러 제품군의 대형화가 돋보인다. 이미 내수시장에서는 양문 냉장고, 대형 디지털TV, 에어컨 등이 줄줄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고 수출제품의 고부가화에도 단단히 한몫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한켠에서는 다양화·소형화를 위한 노력도 지속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컴퓨터업계에서 입는 컴퓨터가 등장할 것이란 얘기는 수년 전부터 있어 왔고 이제 이 전망은 제품이 나오면서 실현됐다. 가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소니가 80년대 초 워크맨을 만들어 휴대형 오디오 시장을 연 데 이어 입는 오디오가 등장했다. 네덜란드의 필립스는 세계적 스포츠복 업체인 나이키와 제휴, 운동하면서 오디오를 들을 수 있는 이른바 입는 가전까지 개발해 놓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기업들이 펼치는 미래가전 개발 경쟁 속에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메이저 가전업체들이 디지털화·고급화의 물결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우리 가전업계도 미래 가전업계의 생존여부를 결정짓는 열쇠를 디지털기술의 복합 및 융합과 이를 네트워크로 연계하는 기술력에 기반하고 있다.
이같은 가전업계의 사고를 반영하듯 삼성전자·LG전자의 최고경영자들은 잇따라 가전에 있어서의 디지털화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고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세계 최초의 디지털가전 출시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영상관련 제품은 디지털방송 개시와 월드컵·아시안게임 등 국가 중대사를 앞둔 가운데 서서히 개화되면서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앞두고 있다. 디지털TV분야는 ‘디지털세계와 연결시켜주는 창’으로 불리는 모니터기술력, 세계 최고의 칩 설계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어느 방송형식도 소화해내는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시장을 주도해온 VCR제품의 흐름이 DVDP 위주로 전환되면서 이 시장에서 역시 세계 넘버원을 위해 내닫고 있다. HDTV 개발과정에서 확보한 기술력은 세계 1위에 손색이 없다. 냉장고와 세탁기 역시 창의력을 앞세워 저전력·저소음 설계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제품군이 쏟아지고 있다.
가전업계는 이러한 개발경쟁 가속화와 함께 세계시장을 주도할 가전왕국 코리아의 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전업계의 기술개발·브랜드유지·글로벌생산판매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국내 가전 3사는 오는 2005년까지 세계 1위의 디지털가전업계로 발돋움하기 위해 각각 2조원 이상의 비용을 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이같은 노력의 반영이다.
업계는 특히 인터넷 및 홈네트워크 등 첨단 디지털기술을 적용한 고가·고급브랜드 전략을 통해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어서 한국의 새로운 ‘디지털 가전 신화’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기업들은 제품의 디지털화에 그치지 않고 이를 뒷받침할 글로벌화 노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제품의 디지털화에 그치지 않고 한국중심에서 벗어나 신흥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마케팅 생산체제를 갖추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제조 네트워크를 수출교두보로서 활용하면서 물류네트워크를 연계한 디지털가전신화를 만들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우리가전업계가 전세계적으로 통신 반도체 산업이 세계 IT전자산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고의 틀을 거부하고 디지털 가전을 통해 세계시장 주도의 새로운 틀을 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전기술을 디지털화하고 융합하고 연결(네트워킹)하는 작업이 숨어 있다.
디지털세상의 흐름을 선도하려는 우리가전업계의 노력과 역량을 볼 때 가까운 시일 내에 가전산업분야에서도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올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세상이 디지털화를 향해 진보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가전제품을 내놓고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나가는 우리 가전업계의 미래는 밝다.
더이상 가전산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며 누가 디지털화를 기반으로 역량을 살려갈 수 있느냐가 시장주도의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디지털화·고급화의 최일선에 서 있는 우리기업의 위상은 세계 전자 가전업계를 주도하는 위치에 우뚝 서 있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