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인쇄회로기판(PCB)산업에 희망은 있다.’
올해로 30년째를 맞이한 PCB산업계가 이른바 ‘빅(big)3’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업계가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나선 것.
이같은 움직임은 소재·장비·PCB 등 94개 업체가 참여하는 한국인쇄회로산업협회(KPCA)의 출범으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는 이 울타리 안에서 첨단 애로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해외시장 공동 개척, 시장정보 교류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PCB산업의 아킬레스건인 자본력 및 기초·소재기술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의 한 원로는 “각자의 노력 덕분에 세계시장에서 PCB산업이 5위권에 올랐지만 실상은 선두주자와 후발주자의 치열한 견제 속에서 안절부절하는 상황이었다”며 “대자본이 시장을 지배하는 21세기에는 업계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를 계기로 세계인쇄회로산업협회(IPC)의 회원국에 가입하는 등 산업계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이 회원사들의 다짐이다.
PCB업계는 그동안 세계시장의 기술흐름을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비회원국인 탓에 PCB와 관련한 기술표준논의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었다. 장치산업의 특성상 미래 기술과 시장규모를 파악, 선투자를 이뤄야 하는데 정보 통로가 가로막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창의적이고 젊은 인재들이 전면에 나서려는 조짐도 업계의 또 하나의 새로운 변화다. 그동안 창업주와 소유주 중심으로 움직이던 업계에 2세 경영인이나 전문 경영인들이 전면에 나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 업계는 이들이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개방적이고 공격적인 사업경영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업계 일각에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이직률을 줄이기 위해 스톡옵션제·연봉제·우리사주제 등 예전에 없던 다양한 인사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모두 이들의 작품이다.
생산라인의 개방도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기가 외부에 일절 공개하지 않았던 대전사업장을 동종업체에 열어놓음으로써 PCB산업계에 글로벌 마인드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이 미국·일본 등 선두주자와의 기술격차를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등 후발주자들과의 기술격차를 벌릴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할 것으로 업계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에 매달리는 보수지향적인 경영 마인드로는 세계시장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힘을 합쳐 혁신적인 경영을 펼쳐야만이 PCB산업이 비로소 선진 대열에 당당히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길이 30개의 성상을 쌓아올린 올해 다시 타오르는 것은 업계와 국내 정보기술(IT)산업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퍽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