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노조와 소액주주연합을 중심으로 메모리부문 매각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일 하이닉스와 채권단, 마이크론 3자가 맺은 조건부 MOU에 상당한 독소조항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 MOU는 특히 지난 3월 19일 박종섭 하이닉스 사장이 마이크론과 협상을 마치고 돌아올 때 가져왔던 마이크론의 최종 제안서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채권단이 이는 ‘불합리하다’고 판단, 4월 4일 마이크론측에 다시 보낸 수정제안서 내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하이닉스 매각에 대한 찬반 양론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MOU 전문에 나타난 주요 쟁점사항과 찬반 여론을 정리했다.
◇85% 고용 동의=MOU에는 ‘양수인의 고용제안을 받은 근로자의 85% 이상 및 실질적으로 모든 핵심 근로자(실사후 당사자들이 함께 확정)에 의한 고용동의는 양수인의 거래완료 의무 선행조건이 된다’고 명시돼 있다. 즉 마이크론으로부터 고용제안을 받은 메모리부문 근로자의 85% 이상이 동의해야 본계약이 체결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하이닉스 노동조합이 23일 매각반대 투쟁을 천명하고 안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본계약 체결은 난항이 예상된다. 현재 하이닉스의 총직원은 1만3000여명. 이 중 메모리부문 인력을 굳이 구분한다면 약 8500∼9000명 수준이다. 생산직 근로자가 주축인 노조 가입자는 이천공장 3200여명과 청주·구미공장 4300여명 등 7500여명이며 메모리부문의 노조가입자는 5500∼5600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결국 전체 메모리부문 직원의 85%인 7300여명의 고용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이 중 58%가 노조 가입자라는 점에서 본계약 체결을 낙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마이크론이 85%의 고용동의 조건을 제시한 것은 추후 협상결렬에 대한 책임을 하이닉스측에 떠넘기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용까지 책임지겠다고 한 마당에 근로자들이 동의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된다면 그 책임은 근로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식처분 제한=양해각서에는 4개월 이내에 유진공장 부채처리 용도를 제외하고는 마이크론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1년안에는 전체 주식의 50%까지, 2년안에는 100%를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1년안에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했던 마이크론의 당초 요구사항에 비해 상당부분 개선됐지만 즉시 팔 수 있도록 주장해오던 채권단 역시 한발 후퇴한 것. 채권단이 주식을 현금화하려면 최소 4개월을 기다려야 하므로 채권단은 주식 적시 매각에 대한 실기도 감수해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마이크론이 신주발행을 통해 채권단측에 주식을 지급하기로 함에 따라 늘어나는 주식수만큼 주식가치 또한 절하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마이크론이 전체 주식수의 20%에 해당하는 1억860만주를 추가로 발행할 경우 이론상으로는 그에 상응하는 주식가치가 절하되므로 실제 주당 가치는 채권단이 예상하는 35달러보다 훨씬 낮아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지적재산권 및 영업권=지적재산권 및 영업권리는 모두 마이크론이 가져간다. 반면 향후 특허소송 등이 문제가 돼 우발채무가 발생할 때는 하이닉스가 책임을 지기로 했다. 이에 대한 우발채무를 고려해 마이크론은 일단 매각대금(1억860만주) 중 1428만주(약 10%)를 위탁(에스크로) 계좌에 예치한 뒤 추가 손실발생시 일정액을 되찾아가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조세·환경·지적재산권 관련 우발채무는 제외하고 있어 사실상 25% 이상을 하이닉스가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 더욱이 하이닉스는 반도체 개발 및 제조에 필요한 라이선스를 향후 회사 주인이 바뀌었을 때 승계되지 않고 새로 계약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어 우발채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항 역시 마이크론의 요구를 100% 수용한 것으로 하이닉스의 주장은 하나도 반영이 안된 셈이다.
◇고조되는 찬반 양론=MOU 내용이 공개되자 노조 및 소액주주들은 ‘헐값매각’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같은 조건이면 차라리 채권단이 부채를 조정해주고 구조조정기금을 투입, 하이닉스의 독자생존을 지원하는 게 낫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우증권 전병서 부장은 “차라리 이같은 조건이면 구조조정기구(CRV) 등을 동원해 자금을 지원하고 장비·재료업체들이 주주로 참여해 공동 회생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반면 찬성론파는 “매각 외에 더이상 대안이 없다”며 “실기하지 말고 이번에 팔자”고 주장한다. 산업자원부 담당자는 “하이닉스는 현재 매각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것으로 본다”면서 “대신 국내 반도체산업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산업육성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