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석유 e마켓이 직접 원유를 수입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섰다. 명목상으로는 전자상거래 활성화 차원에서 손쉽게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지만 결국 전자상거래만으로는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거래중개는 e마켓 본연의 역할이긴 하지만 현재 본연의 사업만을 하는 곳은 손으로 꼽을 만하다. 특히 지난해 오프라인 기반이 흔들린 건설·섬유 업종의 수직형 e마켓은 대부분 스스로 ‘솔루션 업체’라고 내세울 정도로 대변신을 했다.
한 e마켓 사장은 “e마켓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e마켓이 얼마나 있느냐”며 “e마켓이 활성화된다 하더라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털어놓았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바로 e마켓 업계의 현실을 대변하는 말이다. 오프라인 기업이 e마켓을 활용하지 않으니 수익을 내야 하는 e마켓은 부가사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e마켓 업계의 항변이다.
그런데 오프라인 기업들은 아직 e마켓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데다 기존 거래를 대체할 정도로 큰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거래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누군가 한걸음 물러서지 않고는 꼬리를 물고 풀리지 않을 문제다. e마켓 업계의 활성화를 논의하다 보면 양비론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프라인 업체들이 e마켓 상에서 거래를 회피하는 이유는 기존 구매행위를 대체할 만큼 온라인 거래가 가져다주는 이윤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e마켓 활용을 통해 비용절감뿐만 아니라 프로세스 혁신까지도 기대하고 있지만 이를 완벽히 충족시켜주는 e마켓은 드물다.
특히 공개형 e마켓 규모가 너무 적어 신뢰성을 갖기 힘들다는 것도 거래회피의 첫번째 이유다. 때문에 지난해부터 대기업들은 자체 e프로큐어먼트 구축에 나서고 있으며 자사 협력업체와의 온라인 거래를 위한 사설형 e마켓을 별도로 설립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문영수 케미즌닷컴 사장은 “e마켓이 산업의 e전이(transformation)를 앞당겨야 한다는 산업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규모가 너무 작은 것이 한계”라고 인정했다. 해당산업의 e전이를 책임지겠다고는 하지만 결국 단기적으로 수익성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것도 아직 e마켓 자체가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장균 연구원도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임기웅변적 대응에서 탈피해 e마켓 본연의 역할에 치중하는 장기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현 상황을 e마켓의 잘못으로만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인맥에 의한 거래, 거래정보의 폐쇄성, 주주사 중심의 내부거래 등 기존 오프라인 기업의 잘못된 거래관행도 한 몫 거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e마켓의 주주사로 참여한 오프라인 기업의 잘못은 짚고 넘어갈 만하다. 이는 최근 문을 닫은 켐라운드의 사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켐라운드의 주주사는 LG상사·현대종합상사·SK글로벌 등 3대 종합상사를 포함해 22개 기업이다. 지난해 초부터 켐라운드가 주주사를 찾아다니며 자사 사이트를 통해 일정 정도 거래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결국 주주사들의 무관심속에 켐라운드는 사라졌다.
주주사도 거래하지 않는 사이트에 다른 기업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오프라인 기업들의 수구적인 자세가 e마켓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기업소모성자재(MRO) 전문 e마켓들을 중심으로 대형 e마켓들이 최근 분기별 영업이익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오일펙스 등 일부 공개형 e마켓들이 하반기에는 거래중개를 통한 수수료만으로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알려져있다. 게다가 사설형 e마켓들이 점차 고객 대상을 외부로 확대하는 등 e마켓의 발전단계에 따른 새로운 추세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