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과 하이닉스의 조건부 MOU 승인절차를 앞두고 하이닉스 노조 및 소액주주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하이닉스 채권단과 업계는 물론 미국 현지에서도 이번 매각의 성사 여부와 효과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매각이 실패하면 더이상의 대안이 없는 만큼 확고한 방침과 입장이면 MOU를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MOU 세부안을 들춰본 이들은 이같은 조건이면 차라리 대안을 찾아나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당초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싼 값에 매입했다며 환영의 분위기를 연출했던 현지 외신 및 증시분석가들은 최근 태도를 바꿔 추가 투자에 대한 부담은 큰 반면 시너지 효과는 적다는 전망을 내놓음으로써 마이크론의 주가를 여지없이 끌어내렸다.
이처럼 양사의 이번 조건부 MOU 체결을 두고 안팎으로 불만의 소리들이 터져나오면서 양사가 어렵사리 MOU를 통과시키더라도 본계약까지 가기가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MOU 조건 받아들일 수 없다=하이닉스 노조 및 소액주주들은 ‘헐값 졸속매각’ ‘불평등 계약’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고 이번 매각을 바라보는 반도체업계 및 증권가에서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하이닉스 노조는 24일 마이크론이 있는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시 현지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하이닉스의 6개 메모리라인을 인수해도 재고용할 직원은 6000여명에 못미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크게 반발,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이다호주 현지 지역신문인 ‘아이다호 스테이츠먼’은 숀 마호니 마이크론 대변인 인터뷰에서 “하이닉스 딜이 성사될 경우 6000여명의 근로자가 추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MOU 조건에서 마이크론이 제시한 하이닉스 직원의 85%가 고용에 동의해야 한다는 사안과 맞물려 결국 하이닉스는 이번 협상이 체결되면 메모리부문 종사자 중 4000명을 감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변의 반대 목소리도 높다. 하이닉스 협력업체의 한 사장은 “당초에는 매각이 필수불가결하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나 이번 MOU 조건은 하이닉스는 물론 채권단, 협력업체 모두에 득이 될 게 없다”면서 “정부는 밀어붙이기식 매각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병서 대우증권 반도체담당 분석가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기반으로 해 사업을 펼치고 있는 반도체 장비·재료업체의 시가총액이 70조원에 이른다”면서 “하이닉스를 매각하면 이들 업체의 가치는 절반 이하로 떨어질 뿐만 아니라 산업인프라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이닉스 채권단 투신권 한 관계자는 “투신권이 확보할 수 있는 채권회수액은 극히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익히 알지만 이번 MOU 조건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너무 문제가 많다”면서 “만약 MOU 통과를 위해 채권단 내부의 동의를 이끌어내도 본계약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신 및 현지 분석가들의 전망도 나빠져=조건부 MOU 체결이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당초 반도체산업의 구조조정 효과로 인해 시장이 좋아질 것이라며 다우존스·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등 낙관적인 전망을 펼쳤던 언론들이 하루도 채 못가 불투명한 전망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 지역신문인 더 리지스터 가드는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인수해 1억860만주를 신주로 지불하면 마이크론의 주가가 17%는 떨어질 것이라고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하이닉스의 이번 MOU 체결은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라 부실기업을 외국 투자가에게 넘기려는 한국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며 매각대금도 34억달러에 머물고 해외부채 10억달러 및 우발채무 5억달러 등을 제외하면 채권단이 회수할 금액도 없어 최종타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마이크론이 경쟁력 없는 생산설비를 폐쇄하기보다 이를 업그레이드하게 되면 생산량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어 구조조정 효과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반도체전문 온라인 매체 EBN도 매각가격이 확정되지 않아 향후 협상은 마이크론의 주식가격 등락에 좌우되면서 최종 협상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팔 수 있을 때 팔자=반면 일각에서는 매각이 대세면 이번밖에 기회가 없다는 주장이다. 매각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이덕훈 한빛은행장은 24일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팔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번 금액은 회사를 정리하려는 현 상황에서 만족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채권은행의 한 관계자도 “대우자동차의 사례를 보지 않았느냐”면서 “매각의 기회는 이번이 최적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각 찬성파의 의견은 불평등 계약이라는 반발의 목소리에 가려져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채권단이 오는 30일 MOU를 통과시키더라도 그 후유증은 불을 보듯 확연하다는 점에서 파장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