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54)차차세대네트워크(NNGN)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가 지금과 같이 보편화된 이유 중 하나는 사용이 간편하기 때문이다. 송수화기를 들고 버튼만 누르면 상대방과 통화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기능적인 훈련이 필요없는 것이 전화의 특성이다. 실제로 전화가 개발되고 상업화가 시작된 미국에서는 사업초기 신문광고에 ‘전화는 사용하기 편한 기계’라는 광고가 게재되기도 했다.

 현재의 정보통신 매체는 발전속도가 빠르고 그 기능 또한 다양하게 발달돼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부가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어 단순히 전화를 걸고 받는 기능만 활용하는 이용자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사용할 수 있음에도 사용하지 못하는 기능이 자신의 전화기에 부여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통신사업자는 좀더 편리하고 다양한 통신을 수행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장비, SW개발을 이용자로부터 요구받는다. 독점사업인 경우에는 그 속도를 조정해가면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지만 경쟁사업체가 있는 경우에는 하나의 전쟁처럼 개발과 보급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들은 어떤 기술과 네트워크를 활용했는지에 대한 의미를 갖지 않고 부여되는 기능에 대해 얼마만큼 쉽고 단순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 하는 평가만 내릴 뿐이다. 이런 현상은 기존 시스템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나타난다.

 발신자번호표시(콜러ID) 서비스가 있다. 발신자의 전화번호를 착신자에게 알려주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익명성을 제거해 사회 전반적으로 투명한 정보통신문화 형성에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생각만해도 가슴 저리는 사람의 목소리 한번 들어볼 수 없도록 해 다 큰 소년의 가슴을 태우기도 한다. 이 콜러ID 서비스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가입자가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 전체가 디지털화된 교환기에 수용돼 있는 가입자에게만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기존 교환시스템에 수용된 일부 가입자는 서비스 이용이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해 교환기를 대체해야만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들은 모든 가입자에 대한 콜러ID 서비스를 요구한다. 그들은 장비를 교체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돈이 투입돼야 하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서비스 제공 여부만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용자들의 이러한 요구도 통신사업자들이 차세대네트워크(NGN) 사업을 추진하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됐을 것이다. 새로운 서비스 제공이 여의치 않은 교환시스템을 PSTN 형태의 디지털 교환기로 바꾸는 것보다는 NGN으로 바꾸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KT NGN사업의 경우 기존 교환시설의 30%를 대체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대체 대상 교환기를 액세스 게이트웨이를 활용한 패킷 교환망으로 대체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증가하는 데이터 통신의 처리와 새로운 서비스 제공을 위한 시급성까지 요구받는다. 우리의 기술이 상용화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는 그 시급성도 안타까움을 준다. 이미 경쟁 사업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 외국의 시스템이라도 도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NGN의 기본 구도는 통합이다. 교환기능과 인터넷 접속, 부가서비스 제공 등을 액세스 게이트웨이에서 통합해 처리한다. 통합이 가능한 이유는 데이터와 음성신호를 모두 인터넷 신호로 바꿔 처리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시스템과 서비스의 통합이 가능하며 그것은 곧 힘으로 작용하고 원가·운용비의 절감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NGN은 기존 교환기와 라우터 등을 통합하기는 하지만 PSTN 방식의 교환기능 자체를 없앨 수 없는 네트워크다. 가입자단에는 기존 PSTN 형식의 가입자 회선과 전화번호가 그대로 존재한다. 핵심적 역할을 하는 액세스 게이트웨이의 활용에도 불구하고 가입자단에서는 여전히 기존 PSTN과 다르지 않다.

 이 과정에서 만일 NGN에 수용돼 있는 모든 회선이 초고속 인터넷 회선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기존 PSTN을 대신할 수 있는 대형 인터넷 전화시스템이 함께 구성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액세스 게이트웨이가 필요 없어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라우터를 통한 인터넷 회선의 제공과 그 초고속인터넷 회선의 종단에 부착되는 홈 게이트웨이를 통해 모든 것을 인터넷 신호로 바꿔버리면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기존의 전화는 인터넷전화 시스템의 소프트스위치에서 담당하게 되고 호처리뿐만 아니라 팩스·음성메시지·메일 등 모든 서비스가 인터넷 신호와 홈 게이트웨이를 통한 통합 처리가 가능해진다. 홈 게이트웨이를 통해 실시간적인 보안·원격검침 등 가정과 사무실에 대한 모든 원격처리가 가능하게 된다.

 이때 기존 통신사업자들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인터넷 전화의 확산은 추세라고 볼 수 있지만 기존 PSTN 전화번호가 갖는 가공할 만한 가치는 함부로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기존 전화번호에 대한 문제는 모든 전화를 인터넷 전화로 운용하면서 별도의 DB를 통한 전화번호 전환과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가입자가 초고속인터넷 회선에 수용된 액세스 게이트웨이가 필요없는 이런 네트워크의 개념을 차차세대네트워크(NNGN)라고 하자. 기존 교환시스템의 대체가 아니라 기존 PSTN 교환시스템을 없애는 개념의 네트워크다.

 NNGN 구축이 현실 가능한 개념이라면 현재 상황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유리한 입장이다. 초고속 인터넷회선의 밀집도가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KT가 가장 유리하다. 가정까지 이어진 2000만 이상의 가입자 회선이 있고 그 가입자 회선 중 800만회선 이상이 NNGN에서 활용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에 가입돼 있다. 전국적으로 본다면 50%가 안되지만 지역적으로 본다면 그 밀집도에 있어서 매우 높을 수도 있다. 과감하게 가입자 회선 모두를 초고속 인터넷 회선화해 운용한다면 세계 최초의 NNGN을 상용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소설가적 생각이거나 이미 관련기업에서 많은 부분 진척돼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NNGN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의 정보통신 환경에서만이 가시화될 수 있는 개념인 것만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기왕할거면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다음세대가 아닌, 다다음세대의 통신망 구축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를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찾는 문제가 우선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세계인이 선망과 두려움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계 최강의 초고속인터넷이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익을 발생시키고 있는 세계 최저가의 초고속인터넷이 있다. 이런 강점을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무기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때가 지금이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점은 보편화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