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컴퍼니>IT업계 `와이키키 브라더스`

 “83년 밴드부에서 활동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울었습니다. 꼭 내 얘기 같아서요.” “기타 하나로 힘겹게 가리운 발가벗겨진 나의 초상. 내 나이 서른둘 그리고 곧….”

 지난해 10월 개봉된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감독 임순례)를 본 영화팬들이 인터넷에 쏟아낸 감동과 찬사들이다. 여기에는 변두리를 전전하는 소외된 3류 밴드를 그린 이 영화에 그토록 관객들이 열광한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고교, 중학교 혹은 초등학교 시절 한번쯤은 비틀스나 송골매, 함중아에 빠져본 적이 있을 30대 초반부터 후반대의 남녀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와이키키브라더스의 주인공 ‘성우’나 ‘인화’를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다시 80년대로 돌아가 기타에 몸을 맡기고 흠뻑 취하고픈 열정을 그대로 남겨둔 채.

 김명식 쌍용정보통신 과장(36)과 김남정 SKC&C 대리(31) 역시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보낸 ‘와이키키브라더스’다. 이들은 각각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IT업체에서 근무하며 전문 분야에서 승부를 걸고 있지만 어린 시절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음악을 삶의 일부로 여기고 산다.

 그의 음악사랑은 초등학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울림의 음악을 처음 듣고 난후의 충격으로 그는 이때부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음악을 섭렵하며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팝이 유행처럼 번졌던 시절 김 과장은 매주 발표되는 빌보드 차트의 상위곡을 영어단어보다 더 열심히 암기하곤 했다. 차트 1위곡을 맞히는 내기에선 항상 친구들을 제압했다.

 책가방에는 항상 ‘월간팝송’과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들을 소형라디오와 이어폰이 참고서와 문제집을 대신했다. 고교 시절에는 언더그라운드 밴드 생활을 하면서 록에 탐닉했다. 들국화의 음악을 들으며 전율을 느꼈고 가족들 몰래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밤새 기타를 치기도 했다.

 “가족들은 여전히 음악에 심취한 제게 못마땅해 하기도 합니다. 아직 싱글인 제게 가끔 제방에 수집한 CD들을 보면서 장가 갈 밑천이 음반수집에 다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야단이죠.”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집해 온 음반은 지금 방안 가득해 족히 2000장이 넘는다. 음악평론에도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진 그는 음반평을 정리해 놓은 것만도 200여장에 이른다.

 또다른 주인공 김남정 대리는 지난해 4월,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받았다. 대학때 자신이 결성한 동아리밴드 ‘엑스타시’의 후배가 찾아와 11주년 정기공연 무대에 함께 서자고 제의한 것. 바쁜 와중에도 록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김 대리는 곧바로 현대정보기술에 근무하는 절친한 음악지기 한규돈 대리와 후배들을 규합해 6개월간의 맹연습에 들어갔다.

 손가락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몸도 천근 만근 무거웠지만 뜨거웠던 옛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연습에 열중했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홍대 부근 한 클럽무대에 서게 된 그는 음악을 통해 잠시나마 진정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김 대리가 록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록과 헤비메탈 음악에 김 대리와 동생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두 형제는 푼돈을 모아 전자기타를 장만하고 본격적인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고교 시절, 친구 다섯명과 의기투합해 밴드를 조직하고 서툰 실력이나마 무대에 서보기도 했던 김 대리. 대학에 진학해 다시 한번 밴드를 결성했지만 두번의 공연을 뒤로 한 채 군 입대 후 복학과 취업이라는 평범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공연에서의 환호성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아요.”

 지난해 공연은 잠시 숨어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깨우는데 충분했다. 김 대리는 올 가을 또 한번의 공연을 계획하고 선곡 및 개인 연습에 들어갔다. 록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즐거운 김 대리는 35살에 친구와 함께 기념음반을 내겠다는 소박한 꿈을 밝혔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