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안에 값비싼 AV시스템을 들여놓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벽면을 가득 채우는 초대형 모니터에 앞뒤로 스피커를 주렁주렁 달아야 영화, 공연실황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AV 마니아층이 두껍게 형성된 것이다. 초라한 14인치 흑백TV로 주말의 영화를 재미있게 보던 시절에 비하면 우리 국민의 문화적 소비성향도 엄청나게 발전한 셈이다.
기계를 통해서 예술적 감동을 추구하는 마니아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한가지 모순점이 발견된다. 아무리 좋은 기계로도 현장 공연의 감동을 안방에서 그대로 재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틈만 나면 전자상가를 기웃거리며 돈 쓸 궁리를 한다는 점이다. 낡은 LP음반에서 원음을 뽑으려고 수천만원짜리 오디오를 사느니 동네구청에서 열리는 공짜음악회에 구경가는 게 훨씬 더 즐거운데도 말이다.
이처럼 문화생활을 위한 첨단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음악, 연극 등 전통적인 현장예술은 기계적인 방법으로 완벽하게 복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로봇기술을 각종 예술분야에 접목시킬 경우 한번 막을 내린 예술공연도 그대로 재연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유명 피아니스트가 연주회를 할 때 손가락이 건반에 가하는 압력변화를 디지털신호로 기록할 경우 100년이 지난 후에도 실제 피아노를 통해 울려퍼지는 고인의 ‘생음악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음악가의 섬세한 연주테크닉을 그대로 저장하는 로봇악기가 등장할 경우 완벽한 아날로그음, 진짜 악기의 울림이 그대로 재연되기 때문에 굳이 스피커를 통한 가짜 원음재생에 매달릴 필요가 없게 된다. 요즘 나오는 디지털피아노는 이미 완벽한 녹음, 재생기능이 지원되고 있으며 향후 10년내에 아날로그 피아노에 로봇기술을 접목한 로봇피아노가 실제로 등장할 것이다.
연극, 춤에 로봇기술을 접목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인간의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형식의 경우 신체 근육의 움직임을 전기적 신호로 저장할 경우 위대한 무용가의 그림 같은 동작도 기계로봇을 통해 다시 구현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로보쓰리의 김준형씨는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인형극(marionette)원리를 이용한 퍼포먼스로봇(mariobot:marionette+robot)을 개발했다. 실제 여성의 신체 사이즈를 본떠서 만든 이 로봇은 다음달 서울강남의 한 카페에서 데뷔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손님들은 매력적인 여성무용수(로봇)가 천장에 매달린 상태로 음악에 맞춰 댄스를 추는 장면을 보게 된다. 각종 예술공연에 로봇기술이 적용되는 신호탄이다.
혹자는 로봇이 단지 사람을 흉내내는 행동에 무슨 예술적 가치가 있냐고 비판하겠지만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시대에 연극, 춤 같은 현장예술도 마냥 일회적인 퍼포먼스로 남아있을 수 없는일이다. 향후 로봇은 새로운 예술도구로서 현대인의 문화생활을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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