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브랜드 일류화에 필요한 기회 포착중’, LG전자는 ‘브랜드없는 생산 확대’, 삼보컴퓨터는 ‘ODM과 브랜드 양동작전’
삼성전자·LG전자·삼보컴퓨터 등 국내 PC메이저 3사의 행보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국내 3사는 그동안 델컴퓨터·HP·IBM 등 미국계와 도시바·NEC·소니 등 일본계 브랜드 메이저, 이들과 손잡은 콴타·컴팔·인벤텍·아리마·에이서 등 대만의 OEM 및 ODM 메이저의 틈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해왔다.
이들 3사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내수시장에서 자존심을 건 치열한 순위다툼을 펼칠 만큼 동일한 색깔을 띠었다. 3사는 내수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수출은 OEM이든 브랜드든 가리지 않고 확대하는 전략을 똑같이 구사해왔다. 그러나 이후 해외시장 공략을 강화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자 점차 차별화된 전략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3사 중 제일 먼저 독자행보를 모색한 곳은 삼성전자였다. 이른바 90년대 중반 전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 구호와 맞물려 삼성이 회심의 역작으로 추진했던 이른바 ‘명품’ 프로젝트 때부터다. 삼성은 가전제품과 함께 PC에서도 일류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며 미 AST사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현지 브랜드를 소유함으로써 PC브랜드 메이저로 올라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막대한 자금만 허비하고 뒤이은 IMF 한파까지 맞으면서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은 주춤해졌다.
이후 삼성은 내수에서는 여전히 막강한 브랜드파워를 유지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브랜드냐, OEM이냐를 놓고 고심하는 불분명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삼성의 이같은 태도는 다시한번 일류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삼성과 달리 지난 96년 11월 IBM과 전략적으로 제휴하면서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LG전자는 IBM과 제휴하면서 과감히 브랜드를 포기하고 ‘브랜드없는 생산’에만 전념하는 길을 선택했다. 내수판매는 두 회사가 합작해 설립한 LGIBM에 이양했으며 해외시장은 OEM 또는 ODM 방식으로 공략하는 데 주력했다. 제휴과정에서 IBM과의 OEM 거래가 담보됐던 것은 물론이다. 이후 LG전자는 컴팩까지 ODM 거래선으로 끌어들이면서 상당물량을 생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LG전자는 이미 기술력에서는 IBM·컴팩과 동시거래를 할 정도로 대만 ODM 메이저를 앞섰다고 자평하고 있으며 물량면에서도 대만 메이저업체를 조만간 앞지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LG가 브랜드시장에서 철수하고 삼성의 브랜드 강화전략이 IMF로 엉거주춤해지면서 삼보컴퓨터의 공세가 시작됐다. 삼보는 미국에 e머신스라는 합작사를 설립하고 저가 브랜드 전략을 적극 구사하기 시작했다. 삼보의 저가 브랜드 전략은 초기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갈수록 채산성 악화로 어려움에 직면, 끝내는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삼보는 현재 수익성없는 저가 브랜드 전략대신 선진시장에서는 ODM, 개발도상국 시장에서는 브랜드라는 이원화 전략으로 굳혀가고 있다. 삼보의 양동작전은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브랜드 입지를 확보함으로써 브랜드 메이저들과의 ODM 거래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겠다는 포석이다.
3사가 이처럼 서로 다른 3색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글로벌 브랜드와 ODM 메이저에 둘러싸여 있는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각사가 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타개책을 찾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이들의 선택이 앞으로 어떤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 또 샌드위치 신세인 국내 PC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에 관계자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