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붉은 악마들이 대형 태극기를 휘날리며 열띤 응원을 벌이는가 하면 수천, 수만의 관중이 선수들의 플레이에 매료돼 환성을 내지른다.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도 갖은 묘기를 연출하며 월드컵이 가져다줄 흥분과 감동을 전달한다. 그동안 잠잠했던 월드컵 열기가 월드컵 개막을 한달 앞두고부터는 전국민의 폐부 깊숙히 파고드는 순간이다.
진원지는 바로 TV. 월드컵을 30여일 앞두고 월드컵 공식 후원사를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같은 축구 열기를 활용한 마케팅을 본격 전개하고 나섰다.
이들 기업은 특히 국가대표 선수 또는 세계적인 축구 영웅을 CF모델로 동원, TV 속에서 펼쳐지는 경기가 월드컵 경기라고는 표현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온 국민의 가슴에 월드컵 열기를 심어주고 있다.
그동안 월드컵 개최국인 국내에서조차 월드컵 붐이 조성되지 않는다고 대책 마련에 부심해온 관계기관도 이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들 기업은 내심 월드컵 붐을 활용한 자사 브랜드나 제품 광고를 통해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업들이 ‘축구’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국민들의 가슴에 월드컵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이같은 월드컵 마케팅은 공식후원사든 아니든 갖가지 아이디어를 동원,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월드컵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결국 이같은 기업들의 움직임은 자의든 타의든 TV 전파를 타고 국내 전역에 뜨거운 ‘월드컵 붐’을 조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공식후원사들의 월드컵 마케팅 열기가 가장 뜨겁다.
특히 KTF는 ‘코리아팀파이팅(Korea Team Fighting)’이라는 자체 응원단을 조직, 국가대표팀의 평가전이 있을 때마다 ‘붉은 악마’와 열띤 응원전을 펼치며 월드컵 열기 고조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후지필름도 월드컵 캠페인 광고인 ‘파도타기’ 편을 통해 한국팀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기원한다. 한국후지필름은 특히 수천명의 응원단과 함께 인기 여배우 김희선씨를 동원, 뭇 남성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부추기고 있다. 카메라 플래시로 연출하는 파도타기 응원은 가히 환상적이다.
JVC코리아도 이에 뒤질세라 축구장을 배경으로 역동적인 경기 모습을 그려낸 TV CF ‘월드컵편’을 통해 월드컵에 대한 온 국민의 열정과 관심을 대변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캠코더도 대거 동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월드컵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경기중 반칙을 한 선수가 심판이 내민 옐로카드를 치즈와 연결시켜 햄버거를 연상케 한 맥도날드의 광고는 약방의 감초와 같은 신선한 웃음까지 선사한다. 또 코카콜라는 차두리·송종국·최용수 선수 등 국가대표 선수를 모델로 기용해 이들의 환상적인 플레이로 축구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축구를 소재로 한 마케팅에는 이들 공식후원사보다 공식후원사가 아닌 업체들이 더욱 열성적이다. 공식후원사들이야 ‘FIFA’니 ‘월드컵’이니 하는 문구를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어 쉽게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반면에 이들은 표현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언급하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당연히 축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SK그룹의 ‘OK! SK!’ 광고를 보면 이같은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행복이 큰 나라’ 캠페인의 제1탄으로 마련한 ‘축구편’이 그것. 이 광고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화려하고 격렬한 몸짓이나 국가대표급 응원단인 ‘붉은 악마’의 이미지를 담은 기존 월드컵 관련 광고와는 달리 아버지와 아들을 등장시켜 16강 진출을 기원한다. 어떤 경기의 16강 진출인지는 없다. 단지 16강 진출만을 기원할 뿐이다. 이 광고는 또 한국팀이 미국·폴란드·포르투갈 등과 한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이 “미국보다 유럽보다 우리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카피도 동원한다. 월드컵을 언급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를 듣는 이들은 누구나가 월드컵 경기라는 사실을 안다. SK텔레콤 또한 인기 탤런트 한석규씨와 ‘붉은 악마’를 앞세운 TV CF로 월드컵 열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삼성전자의 디지털TV 광고에도 월드컵은 없다. 단지 월드컵이 배출한 세계적인 축구 영웅인 펠레가 나온다. 감독으로서 경기를 지켜보는 펠레다. 선수들을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멋지게 들어간 골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는 순간 기뻐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번 월드컵을 바라보는 온 국민의 염원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삼성전자는 이 광고를 통해 열광하는 월드컵 경기장을 떠올리며 그 날의 감동을 미리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삼성전자의 디지털TV ‘파브’에 대한 광고는 빼놓지 않았다.
LG전자와 대우전자 등 다른 가전업체들도 각각 인기 배우인 장동건씨와 국가대표인 최태욱 선수를 내세워 축구 경기장의 화려하면서도 뜨거운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가운데 최태욱 선수 이외에 다수의 축구선수들과 응원단 및 사물놀이패를 동원한 LG전자의 ‘엑스캔버스’ 광고는 실제 경기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생생한 경기모습과 응원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진한 감동을 준다. 특히 최태욱 선수가 골을 넣은 후 보여주는 세레모니와 감정표현은 조만간 있을 한국대표팀의 경기를 기다려지게 만든다.
신문·잡지와 옥외광고판이나 지하철역사 등에 그려지는 월드컵 광고도 월드컵 열기를 전달하는 월드컵 전도사다. 코카콜라와 나이키코리아 등이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 국민적인 월드컵 붐 조성을 위해 경기장 내부나 지하철역사에 월드컵 관련 그림이나 세계적인 축구스타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이미지로 그려넣음으로써 국민들에게 월드컵이 임박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 것.
여기에 서울지하철공사와 대한항공 등도 월드컵을 상징하는 각종 이미지와 출전선수들의 모습을 담은 월드컵 열차나 월드컵 비행기를 운행하는 등 월드컵 붐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1일은 월드컵 개막 D-30이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다수의 인기 연예인들이 참석하고 한국과 일본의 연예인 축구단까지 가세해 월드컵 개막이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대축제를 연다. 이 또한 전파를 타고 전국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로 다가간다.
또 벌써부터 밤을 새워가며 월드컵 경기를 지켜볼 생각으로 흥분하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월드컵 경기 입장권을 비롯한 다양한 경품과 혜택을 제공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기업들도 속속 늘고 있다. 월드컵 개막을 기다리는 국민들만큼이나 월드컵 특수를 기다리는 기업들의 마케팅 경쟁도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