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외환은행 본점 대회의실에서 열린 하이닉스 채권금융기관협의회 하이닉스 매각 동의안 처리는 그야말로 극적으로 타결됐다.
전체 의결권 92% 가량의 채권단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타결 동의 기준인 75%를 맞추기 위해 신경전이 숨가쁘게 전개됐다. 한때 외환·한빛 등 찬성파 기관은 한때 동의율이 68% 선에 그치자 미참석 채권단의 서면투표를 모두 받는 30일로 발표를 연기한다고도 했으나 결국 회의 시작 4시간 만에 75%를 넘어서자 돌연 발표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당초 계획을 훨씬 넘긴 3시 50분께 시작된 회의는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낙관할 수 없는 오리무중 상태로 진행됐다. 회의 시작부터 일부 투신권은 ‘해외채권단 우선변제’ 조항이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투신권이 건질 수 있는 채권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 않느냐며 강력히 반발해 한때 ‘회의결과는 부결’이라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결국 상당한 진통을 거듭한 끝에 4시간여가 지난 7시 45분에야 가까스로 MOU 승인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일부 투신권은 전체 채권단의 75% 이상이 안건에 동의해야만 동의하겠다는 ‘조건부 승인’의 입장을 밝혔으나 채권단 표결 결과 동의 비율이 75%에 이르지 않자 외환은행과 한빛은행이 여러 차례 ‘압력’을 행사, ‘조건부’를 주장한 투신권이 말을 바꿔 찬성표를 던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하이닉스 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채권단 회의기 열리기 전부터 외환은행 앞에서 한국노총 및 금속연맹과 연대, 400∼500명의 근로자가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매각저지 집회를 열었다. 노조원은 이후 이번 조건부 MOU 타결의 최종 관문인 30일 하이닉스 이사회의 매각 결정을 겨냥해 장소를 하이닉스 영동사옥으로 옮겨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28일부터 하이닉스 전사원을 대상으로 자발적인 사직서를 받고 있는 비대위는 매각이 강행된다면 총사퇴로 맞서는 등 반발 강도를 높여간다는 방침이다. 비대위 측 관계자는 이와관련, “이천·청주 공장을 중심으로 한 직원 사직서 집계는 30일이나 다음달 1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지자 일부 채권단 관계자는 발표가 끝나기 전에 썰물 빠지듯 회의장을 나섰다. 이들은 회의장을 나가며 한결같이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며 “투표는 끝났지만 키는 외환은행 등 주채권은행이 쥐고 있어 결과는 뻔한 것 아니냐”고 비아냥.
일부 투신권이 끝까지 반대하면 결국 정부의 강력한 매각 의지에 반하는 것이라는 분위기여서 회의장 주변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이 아닌가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채권단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라면 내일 하이닉스 이사회의 결과도 뻔하다”며 “하이닉스 이사회가 정부 의지에 반해 독자생존을 끝까지 유지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