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채권단 MOU 가부 투표 막판진통

 

 하이닉스 채권단이 마이크론과 맺은 조건부 양해각서(MOU) 가부 결정을 놓고 채권단이 진통을 겪고 있다. 29일 오후 3시 시작된 전체 채권단회의에는 전체 신고된 채권금액 8조7000억원 중 92%가 참석, 가결을 위한 75%(채권금액기준) 동의를 얻기 위해 조율에 들어갔으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빛·외환·조흥·산은 등 은행권 빅4는 전체회의에 앞서 이사회를 통해 찬성표로 의견을 모았으나 내부조율이 끝나지 않은 농협과 조건부 찬성을 내건 신한은행은 물론, 이번 MOU 통과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한국투신과 대한투신 등이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최종결론은 30일 오전 서면투표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더욱이 30일로 예정된 하이닉스 이사회 역시 노조의 점거농성과 소액주주들의 집단반발이 거센데다 잔존법인에 대한 생존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회사의 비전과 주주와 근로자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이사회의 가결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관측이다.

 ◇팽팽하게 맞선 채권단회의=외환·한빛·산업은행 등과 한국투신·조흥투신·대한투신 등 투신권은 29일 오후 3시 전체 채권단회의에 앞서 잇따라 임시이사회 및 여신협의회 등을 열어 이번 MOU안에 대해 가부 입장을 모았다.

 외환은행과 한빛은행은 이날 각각 이사회와 여신협의회를 열어 매각안에 대해 가결하기로 입장을 내부 정리했고 산업은행도 쉽게 가결로 의견을 모았다. 반면 조흥은행은 29일 오전 11시 여신협의회를 가졌지만 곧바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등 진통을 겪은 끝에 일단 동의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들 4개 은행의 의결권 비중은 53.8%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전체회의 가결을 위한 캐스팅보트는 투신권으로 넘어갔다.

 은행권과 달리 한국투신·대한투신·서울투신 등 투신권은 전체 회의시간인 29일 오후 3시까지 입장을 정리하지 못해 치열한 격론을 벌였다. 특히 이번 MOU체결의 캐스팅보트를 쥔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은 리스크팀·이사회 등을 잇따라 개최했으나 미리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현장투표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조흥투신은 삼성·대우·한화·LG·SK 등 판매사들의 반대의견에 따라 매각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했고 주은투신도 반대의견으로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다만 11% 이상의 채권금액을 가진 유동화전문회사들의 전체적인 입장도 개별화돼 있어 최종 표결까지는 어떤 표를 던질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투신사 왜 갈등하나=투신사들이 최종 결정을 앞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은 투신권이 갖고 있는 15%의 채권을 포함, 무담보채권에 대해 50% 이상 탕감을 해주자는 데 입장이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한빛은행장이 오는 2005년까지 투신권 채권회수율을 50% 이상으로 높여주겠다고 하지만 매각대금을 채권단이 나눠갖지 않고 잔존 하이닉스에 남겨 유진공장 부채와 우발채무 등을 갚기로 하면서 사실상 돌아오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객들의 빗발치는 반발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투신사들의 고민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채권단회의에 앞서 MOU에 대해 반대의견을 모은 조흥투신 한 관계자는 “삼성·대우·한화·LG·SK·현투·KGI 등 판매사의 의견을 수렴해본 결과 대부분 반대의견을 보였다”며 “현재로서는 이번 매각안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조흥투신이 보유한 하이닉스 채권규모는 약 2569억원이다.

 조흥투신과 마찬가지로 하이닉스 매각 양해각서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키로 입장을 정한 주은투신 관계자는 “현재 은행권이 제시하는 입장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이번 매각안에 반대키로 내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이번 매각안이 통과되면 반대의사를 표명한 투신사들과 공동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일정=전체 채권단회의가 진통끝에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이번 1차 조건부 MOU 타결의 데드라인인 30일 오전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30일 오전 예정된 하이닉스 이사회 일정도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일정상 채권단의 동의가 결정된 이후에 하이닉스 이사회 승인의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채권단의 최종 동의여부와 이사회 승인이 완료되면 30일 오후 6시(한국시각)안에 마이크론 이사회의 승인과정을 거쳐 MOU가 ‘조건부’ 딱지를 떼고 정식 MOU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후에는 5월말로 잡혀있는 본계약 마감시한에 맞춰 본계약 체결을 위한 마이크론의 정밀실사 등 후속 과정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채권단 동의-하이닉스 이사회 승인-마이크론 이사회 통과 등의 과정을 어렵게 통과한다 해도 하이닉스 매각을 위한 본계약까지는 숱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미국과 유럽 반독점기구의 승인이 필요하며, 마이크론의 정밀실사와 세부 조항 협의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하이닉스 노조를 비롯해 하이닉스 매각반대 세력이 갈수록 확산되는 등 국민적 반감을 해소해야 하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