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집으로...’가 연일 관중 동원 기록을 갱신하며 한달이나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다. 할머니의 가이 없는 사랑에 이기적인 손자의 마음이 변해가는 모습과 과정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표현해 가슴을 찡하게 한다는 것이 이 영화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다.
박진감이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도 없고 멋진 남자나 예쁜 여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닌 이 영화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모두들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모두들 이런 류의 영화가 흥행을 거둬야 하지 않겠느냐는 바람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정작 이처럼 많은 관객이 몰릴 줄은 몰랐다는 표정들이다.
이처럼 시골 할머니와 아이들 몇명만이 등장하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모습은 그동안 ‘조폭영화’로 대별돼온 폭력물과 코미디물 등에 식상한 관객들이 서서히 감성적인 영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각에서는 국내 영화계의 특성상 이 영화를 계기로 영화계의 감성물이 유행처럼 번져나갈 것이라는 때이른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한 평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특히 영화계에서는 산골에 살면서 평생 영화와는 인연이 없었던 김을분 할머니와 아역배우 유승호군을 주연배우로 발탁해 성공한 점은 배우기근을 운운하면서도 스타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했던 충무로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고 자평한다. 영화의 소재와 자원부문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근래에 보기 드문 가족영화라는 점에서 인기요인을 찾을 수 있다. ‘집으로...’는 한 아이의 내면을 다루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내용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슬프게 또 때로는 훈훈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풀어나감으로써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문화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에는 온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문화상품으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극이나 연주회 등이 고작이었다. 더구나 이조차도 어린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부모가 동행했을 뿐이었지 사실은 어린이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흥행하고 있는 영화 ‘집으로...’는 이같은 선입견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있다. 바야흐로 가족문화 콘텐츠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피터팬’도 지난달 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린 이후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모두가 좋아하는 개구쟁이 ‘피터팬’은 5일 막을 내릴 때까지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어른들에게도 어린 시절 책이나 만화영화 등을 통해 접해온 피터팬을 다시 만날 기회를 제공하면서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한다.
‘피터팬’을 필두로 가정의 달을 즈음해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물이나 전시회 등도 속속 마련되고 있다. 특히 예술의전당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는 이달중에 실시하는 가정의 달 맞이 행사에 ‘아빠와 함께 클래식 음악회’ 또는 ‘가족뮤지컬’ ‘가족영화감상회’ 등의 명칭을 사용, 가족단위의 관람객을 위한 행사로 마련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가족상이 변하면서 가족문화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음을 재차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 가족의 중요성은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네 부모와 자식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종종 허물기 어려운 벽을 쌓아왔다. 부모들은 일이 바빠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자녀들도 공부에 치여 살다 보니 가족이 함께할 시간을 만들기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
하지만 주5일근무제 실시를 앞두고 서서히 여유를 갖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또 부모와 자녀간의 세대차이가 좁혀지고 초고속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가족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단편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게임이다. 최근 들어 가정이나 PC방에서 자녀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부모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하기 힘든 일이다. 또 부부나 가족이 인터넷으로 함께 고스톱을 즐기는 모습도 이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게임은 이제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의 놀이문화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인터넷만 있으면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온라인게임이 다수 서비스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게임(http://www.hamgame.co.kr)이나 넷마블(http://www.netmable.co.kr) 등 게임 포털사이트에서는 테트리스, 퍼즐게임, 장기, 바둑, 윷놀이 등 20∼30여종에 달하는 웹게임을 제공, 10대에서부터
60대 이상의 노년층까지 나이를 불문하고 즐기는 사이트로 각광을 받고 있다.
‘포트리스’와 ‘비앤비’ 등 귀여운 캐릭터를 등장시킨 캐주얼게임이 어린이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 게임은 특히 온가족이 팀을 형성해 대결할 수 있는 기능도 있어 가족놀이로는 그만이다.
또 골프게임 ‘모두의 골프’와 축구게임 ‘위닝 일레븐’ ‘2002 피파 월드컵’ 등 스포츠게임을 중심으로 가족용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단 게임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실제와 거의 흡사한 그래픽과 뛰어난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박진감 넘치면서도 단순한 조작만으로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이밖에 가족이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간을 초월한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르면 오는 7월부터는 국내에도 주5일근무제가 정착되기 시작한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삶에도 여유가 생기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추세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문화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