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누가 이끌까

 하이닉스반도체 박종섭 사장이 30일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이사회의 처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종섭 사장이 사의를 밝힌 것은 일단 정부와 채권단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메모리사업 매각이 이사회에서 부결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박 사장의 사의 표명은 예견된 일이다. 박 사장은 지난주 사석에서 이사회 처리 결과에 상관없이 이사회를 마친 후 사의를 표명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사회에서 MOU 동의안이 가결되면 1만3000여명의 하이닉스 직원을 대할 면목이 서질 않고, 부결되면 독자생존안을 놓고 격앙된 채권단과 협상을 진행해야 하므로 곤란한 점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박 사장은 이날 사의를 표명하긴 했으나 이번 이사회에서 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리가 되기 전까지는 대표이사 사장직을 유지하게 된다.

 정부와 채권단이 박 사장의 사임 의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실제로 박 사장이 대표사장직을 그만 둘지 여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마이크론과의 협상이 무산되긴 했지만 그동안 박 사장이 채권단에 보여준 협상 능력은 탁월했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지난해 하이닉스호가 좌초될 위기에서 마이크론과의 전략적 제휴라는 대안을 들고 나온 것은 박 사장이었다. 메모리업계의 앙숙으로 인식되던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전략적 제휴를 추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 반도체업계는 박 사장의 능력을 높이 샀다.

 2000년 2월 사장에 선임된 후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하이닉스를 이끌어온 박 사장은 회사 이름을 하이닉스로 개명하고 12억5000만달러의 해외주식예탁증서(GDR)를 발행했는가 하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조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어왔다.

 때문에 지난해 말 하이닉스구조조정특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채권단도 박 사장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문제는 박 사장의 후임 인물이 과연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이사회의 MOU 동의안 부결로 채권단의 심기가 불편해지긴 했지만 독자생존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을 찾는다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설령 채권단이 독자생존이 아닌 법정관리나 청산 절차를 밟는다 해도 채권단이 박 사장만큼 경영 및 조직관리 능력을 두루 갖춘 인물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그동안 박 사장을 지켜본 주변인들의 생각이다.

 결국 박 사장의 사임 표명으로 인해 채권단에는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추가된 셈이 됐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