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없는 셋톱박스 사업에 대기업 왜 매달리나…

 지난해부터 대기업들이 가세한 셋톱박스사업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초기 자본투자비만 투입되고 있는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정작 먹을 것은 없는 ‘계륵’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일고 있다.

 그러나 전문 셋톱박스업계의 이러한 시각과 달리 정작 대기업의 깊은 뜻은 따로 있다. 셋톱박스사업은 먼 앞날을 내다본 ‘ 비밀병기’란 게 이들 대기업의 한결같은 얘기다.

 분명 전문업체들의 말처럼 전통적으로 중소기업에 적합한 아이템으로 인식돼 온 셋톱박스 분야에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대기업이 신경을 쓰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 각사 매출이나 수익 비중면에서도 아직까지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아이템이다.

 분명히 셋톱박스는 지상파나 케이블, 위성방송을 수신하기 위한 ‘박스’에 불과하다. 업체별 매출규모만 보더라도 매출과 이익성을 확실히 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0월 삼성전기로부터 인수한 셋톱박스 부문의 연 매출액은 2700억원 규모. 연간 3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삼성전자에 셋톱박스 매출은 1%에도 못미치는 작은 부분이다. 또 1분기에 평균 19%의 이익률을 보인 것과 비교할 때 수익성은 말을 꺼내기조차 어렵다.

 사업규모가 작기는 LG전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뛰어든 이 사업에서 PDP TV용 셋톱박스 1개 모델을 출시한 LG는 내수시장에서 26억원, 북미 위성방송시장에서 22억원 등 총 50억원 미만의 매출을 달성했다.

 하지만 삼성과 LG전자는 올해 이 사업부문에 대한 강한 드라이브 모션을 걸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는 IEEE1394·셋톱박스·디스플레이간 신호를 디지털로 처리하는 기술인 DVI(Digital Visual Interface) 규격을 동시에 지원하는 홈네트워크 셋톱박스를 개발했다. 스카이라이프의 양방향 데이터방송 서비스를 위한 스마트박스2.0 셋톱박스를 이달과 7월 두 번에 걸쳐 1000대를 공급키로 하는 등 이 시장을 주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LG전자도 별도의 테이프없이 HD급 디지털TV 방송을 녹화할 수 있도록 40Gb 용량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내장한 셋톱박스(PVR : Personal Video Recorder)를 다음주 출시할 예정이다. PVR 제품을 월 500대 이상 판매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으며 이 제품 출시를 계기로 셋톱박스 사업을 더욱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편 대우전자도 올 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40Gb HDD를 이용해 최장 36시간 프로그램을 녹화할 수 있는 ‘PVR(모델명 DHD-4000K)’를 출시했다.

 이는 결국 대기업들이 디지털TV와 DVD 등 디지털기기와의 연계성을 확보, 향후 디지털 컨버전스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셋톱박스사업의 위상을 재확인시켜 준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대기업의 셋톱박스사업의 배경에는 ‘향후 도래할 디지털 전성시대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깊은 뜻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LG전자 디지털AV사업부장 안승권 상무는 “셋톱박스는 앞으로 디지털 기기를 연결하는 서버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단순한 방송수신용보다는 하드디스크와 DVD등을 결합한 네트워크형 제품 위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