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월드>e스포츠 스타캐스터가 뜬다

 “아, 안타깝습니다. 드롭십이 테러를 당했습니다.” 프로게이머들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더욱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축구에 송재익이 있다면 게임리그에 정일훈이 있고 야구에 하일성이 있다면 게임리그에는 전용준이 있다.

 ‘게임은 스포츠다.’ 국내 게임 캐스터 1호, 정일훈(33)의 말이다. 경인방송 ‘생방송 모닝 데이트’ 를 진행하는 등 프리랜서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가 다른 프로 섭외가 안들어온다는 선배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게임 캐스터로 나선 지 3년이 넘었다. ‘스타크’가 뭔지도 모르면서 시작했던 정 캐스터는 이제 최고 게임 캐스터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그가 스타크 중계방송 캐스터를 그만두겠다고 전격 발표했을 때는 ‘정일훈 은퇴 반대’를 주장하는 글들이 게임방송 게시판에 홍수를 이루기도 했을 정도였다.

 게임 캐스터 1호인 만큼 항상 그의 뒤에는 ‘맏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방송의 질에서부터, 새로운 게임 중계 프로의 개척, 심지어 출연료 산정에 이르기까지 그가 기준이 되고 책임져야 할 몫은 참으로 크다.

 최근 그는 또 다른 변신을 꾀했다. 변신이란 다름아닌 온게임넷 스타리그 캐스터를 후배 전용준에게 넘겨준 것. 대중적인 게임은 있어야 하나 한 게임이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정 캐스터의 고민이 어려있는 결정이었다. 이번 결정은 후배 양성은 물론 우리나라 게임문화의 다양성과 대안을 찾기 위한 또 다른 여정이 될 것이라는 게 정 캐스터의 말이다. 현재 정일훈 캐스터는 온게임넷과 전속 계약을 하고 ‘커프 리그’ ‘게임퀴즈! 투게더’ 등을 맡고 있다.

 정일훈 캐스터의 뒤를 이어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메인 캐스터를 맡은 전용준씨는 요즘 게임 프로만 보면 그가 보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경인방송국 아나운서 시절, 메이저리그 정규, 포스트 시즌 중계 등 축구, 야구, 농구, 레슬링 등의 종목에서 캐스터를 담당했던 실력파다. 교양프로그램을 오랫동안 맡았던 정 캐스터는 차분하면서도 맥을 잘 짚어내는 스타이일이라면 전 캐스터는 긴박감과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는 스타일이다.

 전 캐스터는 자신의 선택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방송국 직원인 아나운서라는 안정적인 일을 그만두고 게임 캐스터로 나선 것은 성장 가능성있는 분야에서 열심히 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자기 진영만을 안전하게 키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대편의 진영에 뛰어들어 정찰하고 전략을 파악해 유닛을 키우는 스타일이 있잖아요. 저 역시 위험부담은 있지만 진취적인 선택을 해왔던 겁니다. 적진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게임 방송을 시작했지만 저의 전략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게 스스로에 대한 현재의 평가입니다.”

 그는 게임 캐스터도 법상으로는 방송MC에 분류되지만 쇼MC는 음반산업 전반에 관해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없지만 게임 캐스터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스타크래프트리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리그 방송이 개발사 또는 유통사 협찬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시청률뿐만 아니라 시청자가 새로운 게임을 이해하고 게임 자체의 즐거움도 느끼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게임산업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른바 ‘스타 캐스터’로 자리매김한 두 사람이 한국 게임산업과 문화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도 남다르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지만 게임 중계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말을 하게 된다고 고백하는 정일훈 캐스터는 결국 게임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적인 인식 변화와 시스템이 마련돼야 올바른 게임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전한다.

 전용준 캐스터는 특히 국산 전략 시뮬레이션 개발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야말로 게이머의 실력을 겨루고 리그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분야기 때문에 프로게이머를 위해서도 캐스터를 위해서도 게임 소비국이 아닌 생산국으로서 한국이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도 국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개발의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게임 캐스터라는 직업을 새로 만들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건전한 게임문화를 창출하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음에 틀림없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