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바뀌고 있다
<사례 1> 안산공단내 자동차부품 도금업체인 S사의 K사장은 인터넷 마니아다. 직원 25명의 작은 업체지만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고 생산공정 상황을 체크한다. 아직 어설픈 시스템에 불과하지만 그 옛날 주먹구구식의 생산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라고 그는 자랑한다. 주문업체와 연결된 시스템으로 주문과 재고 정도를 파악하는 수준이지만 조만간 전자결제까지 가능한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K사장은 시스템을 온라인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접했다. 고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처음 인터넷에 상당한 거부반응을 보였으나 차츰 인터넷의 매력에 빠져들어 요즘은 틈나는 대로 인터넷과 대화한다. 컴퓨터 자판에 기름때가 묻을 것을 염려해 덮어놓은 실리콘 덮개에는 좌판기호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IT하고 거리가 먼 산업에 종사하면서 남의 집 얘기 정도로만 알았던 인터넷이 업무에 이토록 효율적일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젠 도금업체 사장이 아니라 IT업체 CEO가 된 기분입니다.” 호방하게 웃는 K사장의 얼굴에서 이미 굴뚝기업의 IT화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례 2> “3번방으로 들어오세요. ID는 XXX, 비밀번호 XXX입니다.” 언뜻 음란한 채팅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메신저를 이용한 회의방식이다. 인터넷이 일반화되어 있는 직장안 풍경이다. 굳이 원격 영상회의가 아니어도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가입과 설치도 간편하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메신저이지만 때로는 중요한 회의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최근 기업문화의 가장 큰 변화라면 ‘회의방식의 파괴’다. 집체식 회의로 고착화되어 있던 기업문화가 인터넷이라는 수단이 등장하면서 획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아직은 낯설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확산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특히 빠른 정보를 요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 인터넷 메신저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온라인회의의 장점을 들자면 수없이 많다. 따로 회의실이 필요없고 간편함과 함께 시간절약 등 많은 장점이 있지만 무엇보다 큰 효과는 자유로운 의사교환이다. 대면회의의 경우 상명하달식의 회의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는데 반해 온라인회의는 서로 얼굴을 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평회의가 가능하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해 참신한 아이디어가 속출한다.
D증권사의 한 직원은 “매일 아침 간단한 온라인회의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며 “이사부터 실장·과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참석해 하루 일과의 간단한 브리핑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장으로 격의없이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사례 3> 인터넷이 가져다 준 변화는 온라인회의뿐만이 아니다. 전자상거래 솔루션업체인 이네트는 홈페이지를 통해 항시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전자상거래라는 특수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열린 직장으로 일정 수준만 갖추면 언제든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의지다. lT문화의 개방성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이 회사 마케팅담당 박희균 이사는 “개방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IT기업의 속성상 인재등용은 때를 가릴 필요가 없다”며 “훌륭한 인재 한명이 회사발전의 주춧돌이 될 수 있으므로 인력 선발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단 이네트 한 기업뿐만이 아니다. IT기업 대부분이 항시채용을 내걸고 인재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졸업시즌에 맞춰 물밀듯이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나붙던 광고도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입사원서마저도 인터넷으로 접수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고용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진 것도 IT물결이 가져다준 변화의 한 부분이다.
◇기업이 나서야 한다
IT변화의 물결은 긍정적인 면만을 낳은 것이 아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지녀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는 만큼 폐해도 크다.
일주일만에 도박으로 2억원가량을 날린 피해자가 뒤늦은 후회를 하는 장면이 TV고발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됐다. 정선의 스몰카지노에서 도박에 흠뻑 빠진 피해자는 집도 날리고 가진 재산을 전부 날려 이젠 거지가 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성실한 사회인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이제 집도 절도 없는 홈리스족이 됐다. 가정까지 파탄났다.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먼저 개인의 잘못이 가장 크다. 누구나 사행심리는 존재한다. 단지 사회적 규범, 가정윤리 등이 이러한 개인심리가 돌출되지 못하도록 자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이 사고를 지배하는 성인들도 갖가지 규범에서 벗어나 일탈행위을 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태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 카지노를 운영하는 강원랜드의 기업의식이다. 정부의 허가를 얻고 시작한 사업이지만 결국 국민의 스트레스를 풀고 지역발전을 꾀하지는 취지는 도박에 빠진 개인과 가정의 파탄으로 상쇄하고도 모자란다. 국민건강 차원에서 득보다는 실이 많다. 기업이 이윤을 남겨 발전하는 것을 탓할 수 없지만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쪽 주머니에서 저쪽 주머니로 부가 옮겨가는 식의 기업발전은 공익적인면에서 재고의 여지가 많다.
IT에서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사이버라는 공간이기 때문에’라고 안심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온라인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는 최근 온라인게임의 위해성을 인정하고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를 설립했다. 대외적인 취지는 온라인게임의 올바른 문화정립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속내는 자연 엔씨소프트의 주력 제품인 ‘리니지’에 대한 사회적 물의를 무마시키기 위한 것도 내포돼 있다.
온라인게임의 위해성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게임의 캐릭터를 사기 위해 청소년으로서는 감당치 못할 돈을 구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가 하면 심지어 성을 매매하는 청소년까지 등장했다. 사태가 이쯤되면 공익성보다는 해악이 큰 게임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로 인해 IT 해외수출의 물꼬를 트고 청소년들의 인터넷 근접성을 한층 고조시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중독성이 강한 온라인게임의 경우 학업과 정서발달에 심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 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일전 TV 인터뷰에서 엔씨소프트 관계자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혀 충격은 더욱 컸다. 뒤늦게나마 자사의 온라인게임 위해성을 인정하고 수십억원을 들여 종독예방센터를 설립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사례. 최근 대형 포털사이트 내 확산되고 있는 자살사이트다. 잇단 투신·음독자살이 청소년 사이에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이들 대부분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나 서로의 처지를 비관하며 동반자살하고 있다. 이미 매스컴에서 여러 차례 위해성을 강조했지만 현행법규로는 특별히 막을 방법이 없다. 따라서 잇따르는 청소년들의 자살행위를 방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매개창구가 되는 포털사이트의 책임 역시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만은 분명하다. 일부 사이트 검색 요원들이 자살사이트의 폐쇄를 담당하고 있지만 비공식 그룹으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꾸려나가는 그들을 일일이 체크한다는 것은 무리다.
결국 이러한 사이트들이 계속 확산될 경우 인터넷을 주력으로 하는 IT업체들의 기업 도덕성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이는 단순히 일부 커뮤니티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가정·사회의 문제로 확대돼 IT업체 스스로 불신과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꼴이 된다.
◇CEO가 변해야 한다.
IT문화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을 들자면 ‘스톡옵션’이다. ‘나는 주인, 너는 종업원’식의 고착된 사고로는 업계에서 발을 붙일 수 없다. 사장이라 할지라도 일방적인 경영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직원 역시 주주이고 함께 이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같이 노를 젓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배와 같다. 따라서 ‘나눔의 철학’을 모르는 CEO는 성공할 수 없다.
경영인과 종업원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도 IT문화만의 특징이다. 최종결정은 CEO가 하지만 모든 경영상황을 공개하고 직원들의 뜻을 받아들여 ‘공동경영’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IT만의 독특한 문화다.
여기에 추가되는 CEO들의 몫이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유식해야 한다는 것. 무식한 의사는 살인자와 같다. 한번의 오진은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사회에서 의사를 존경하는 이유도 인명을 구하는 것과 함께 이를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CEO 역시 마찬가지다. 무식한 CEO는 기업을 파산으로 이끈다. 종업원 모두 실업자가 되고 그 가족의 피해는 더 크다. 기업윤리가 강조되고 기업가들의 부단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종결정권자로서의 기본적인 지식은 갖춰야 한다. 공부하지 않고 나태한 CEO는 자칫 공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CEO들에게 일류대학이나 해외 유명대학의 졸업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맡고 있는 분야의 산업동향과 비전을 제시할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IT업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수시로 발전하는 기술동향에 민감하지 못하면 이류·삼류 기업으로 전락한다. 예전 굴뚝기업의 CEO는 경영전반을 이해하면 됐지만 IT기업 CEO는 여기에 전문산업분야 경영력까지 요구된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