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이 하이닉스와의 협상 종결을 공식 선언함에 따라 하이닉스의 해외매각 방침을 거듭 밝혀 온 정부와 채권단의 매각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현실적으로 마이크론 외에는 하이닉스 메모리사업부를 인수할 업체가 없다는 산업계의 정황을 고려하면 제3자를 통한 해외매각은 상당기간의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채권단이 당초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했던 청산의 수순을 밟기보다는 하이닉스의 주장대로 비메모리 분사·매각을 통한 독자생존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는 조심스런 분석도 내놓고 있다.
◇마이크론 공식 선언 왜 했나=마이크론은 하이닉스 이사회가 조건부 양해각서(MOU)안을 부결함에 따라 지난달 30일 오후 6시(한국시각) 협상이 자동 종결됐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재협상 가능성에 대한 국내외의 억측이 꼬리를 물자 다시 공식적인 선언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하이닉스 이사회의 MOU 부결을 압박하며 해외 재매각 추진 및 마이크론과의 재협상에 나설 것을 종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스티브 애플턴 마이크론 사장을 비롯, 경영진들은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미국 현지 언론과 애널리스트들조차 재협상 가능성에 대한 여지가 있다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고 유진공장만 인수한다는 루머 등이 쏟아져나오면서 마이크론측도 상황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특히 애플턴 사장은 이날 “상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예비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고, 협상과 연관된 집단 다수를 합의에 이르도록 할 만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밝혀 정부와 채권단, 하이닉스의 불협화음을 간접적으로 빗대기도 했다.
◇제3자 매각 가능한가=정부와 채권단의 주장대로 하이닉스를 해외에 매각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이닉스의 메모리사업부를 인수할 업체를 처음부터 다시 찾아야 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해외에서 물망에 오를 만한 업체로는 인피니온과 중국 업체들이나 인피니온은 이미 하이닉스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하이닉스와 상당한 협상을 진행했던 중국 업체들은 모든 라인과 인력을 중국으로 가져간다는 전제조건을 달고 있어 난망한 상태다.
또 삼성전자는 하이닉스를 인수할 의사가 없음을 수차례 밝히며 300㎜ 투자에 집중하고 있고 LG그룹 역시 최근 역빅딜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메모리를 인수할 이유가 없으며 인수비용도 크고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탁생산(파운드리)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는 아남반도체·동부전자 역시 메모리는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노후라인 업그레이드를 통한 비메모리 파운드리 능력 확대는 전혀 불가능하지 않으나 자금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독자생존이냐, 청산이냐=결국 정부와 채권단은 하이닉스를 원점에서 놓고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 마이크론과의 불발로 선택의 기회는 더 좁아졌다.
이제 하이닉스의 해법으로는 독자생존과 재매각, 법정관리 등이 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하이닉스는 일단 독자생존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으로 보여진다.
최악의 경우 채권단에서는 채권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없지않다. 마이크론 발표 후 정부 고위 관계자는 “채권단이 하이닉스 부채탕감, 신규지원, 이자유예 등의 지원책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하이닉스는 결국 법정관리나 청산의 길이 유력해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MOU 부결 직전 이덕훈 한빛은행장이 15만명의 실직자를 초래하고 산업공동화의 우려가 큰 청산의 길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언급한 바 있어 청산 방침은 극약처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채권단이 오는 7월 도래하는 차입금 및 회사채 만기 연장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하이닉스는 법정관리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이렇게 되면 채권단은 100%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채권단이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